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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행동들 (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1:51
조회
675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정부는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 대책은 비정규직의 직업능력의 향상과 정규직과의 비합리적인 차별을 방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기업 역시 비정규직의 사용이 노무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만 주목하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노력하나, 그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진지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은 참여 정부가 내세운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을 불신하고, 다음 대통령 선거를 계기 삼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려고 한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여론을 ‘산업화세력에 대한 지지’라고 단순하게 부르나, 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원인들을 고민해야 한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노무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정규직을 이용하여 천원의 상품을 만들고 있었다면, 이 기업이 기존의 정규직 근로자들을 비정규직을 대체할 경우 절반의 노무비용만을 사용하여 같은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듯 손쉽게 비용을 절감하고 자신의 이윤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떤 바보 같은 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책 역시 이러한 원인을 없애는데 착안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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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규모 할인매장이 파트 타이머나 계약직 등에게 낮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면, 단지 그곳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할인매장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필요가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는 적은 비용을 들여 많은 효용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 소비자가 상품의 명목상 가액만을 기준 삼아 상품을 선택한다면, 비정규직이 감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규직을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도태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즉 합리적인 소비자의 행동으로 인하여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소비처럼 보이는 이 행동들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비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이 증가하면 사회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이는 결국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합리적인 소비자는 슈퍼마켓에서는 싼 가격의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세금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는 종전보다 더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그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이 어떤 근로자를 고용하는지를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윤 중 일부를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을 칭찬하고, 그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만약 그 기업이 저임금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사용하여 그 이윤을 만들어 내고선 그 중 일부를 기부한 것이라면, 이 기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평균 이하의 생활을 요구하는 기업에 대하여, 단지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했다는 점만으로 이들을 좋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의 사회 공헌도는 그 기업에 속한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 수준에 좌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대규모 할인매장이 파트 타이머나 계약직 등에게 낮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면, 단지 그곳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할인매장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가격에 큰 차이가 없다면, 차라리 동네의 슈퍼마켓에 가서 소량의 물품을 사서 적게 소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소비 활동이라고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 역시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소비 활동을 하여야 한다. 정부 물품에 대한 입찰과 관련하여, 입찰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 비율이나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근로조건의 차별 정도를 조사하고 이를 점수화하여 그 구매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이 구매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라도, 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는 기업의 불이익을 감소시키는 역할은 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간접적으로 정부가 부담하는 사회보장비용을 감소하는 효과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나 사회단체 역시,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고 그 차별을 감소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나 정부가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각 업종별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 비율이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 비정규직과 정규직 근로자간의 근로조건 차별 정도가 심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여 시민들이 이런 정보에 터 잡아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사회적으로 올바른 기업을 보호하고 이러한 기업들이 확산되도록 격려할 수 있다. 시민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고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정규직을 사용하는 기업은 앞으로도 기업들 사이에서 바보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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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에 이어 국민은행 노사도 올 2분기에 비정규직 직원   8천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사진은 시중은행 전체직원과 비정규직 현황.    


사진 출처 - 한겨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선의 정책이 없다고 포기하기보다는 가능한 방안을 찾아 계속하여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