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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울린 영화 ‘우리학교’ (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4:01
조회
527
지난주 토요일,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다 나왔다. 홋카이도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의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포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 한참이나 여운이 남았다.

사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왜 ‘우리학교’를 보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을까. 아마도 개, 돼지처럼 강제로 끌려가 일본 땅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 1세들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이었으리라.

영화에서는 일제 치하 망국노의 멍에를 지고 고향을 떠나가 일본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노예처럼 살았던, 해방이 되고도 귀향하지 못한 채 탄압과 차별과 멸시 속에 살아간 재일조선일 1세들의 삶이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의 오늘과 함께 그대로 전해졌다.

 
노예처럼 살았던 재일조선인

재일조선인 1세들은 일본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2세, 3세, 4세들이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제대로 쓰고 배우기를 바라며 민족학교를 세웠다 한다. 그러나 일본 땅에서 민족학교는 법적,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민족학교에 대한 일본 당국의 탄압은 물론 우익단체의 테러가 끊이지 않아 초기 재일조선인 민족학교를 다닌 남학생들의 경우 공부할 틈도 없이 민족학교를 지키고 여학생들을 보호하느라 싸우다 졸업을 했다고 한다.

껍데기뿐인 조국해방을 맞은 재일조선인들에게 조국의 분단은 망국 이상의 새로운 멍에였다.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고 민족학교를 지원한 곳은 조국의 북쪽이었다. 남과 북이 한 목소리로 부당한 탄압에 항의하고 규탄하고 민족학교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조국의 남쪽은 무관심했다. 조국분단은 일본에 대한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정책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하여 일본의 민족학교에 대한 부당한 탄압과 차별은 북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을 조장하는 가운데 정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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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 홈페이지




 그 동안 우리는 ‘우리학교’를 잊고 살아왔다. 더 정확히는 일본의 ‘우리학교’에 대한 탄압과 차별을 방조하였다. 고향은 남쪽이나 조국은 북쪽이라는 민족학교 아이들의 인식은 역사적경위로 보건대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정상적이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비로소 재일조선인 민족학교는 식민과 분단의 모진 세월을 뛰어 넘어 우리의 시야에 조금씩 들어왔다. 마침내 ‘우리학교’라는 숭고한 사명에서 기획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빛을 발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말았다.

식민의 한을 가슴에 받아 안고 민족적 차별과 멸시의 핍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겹게 민족성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민족학교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조선의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그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던 민족학교 아이들

일본 당국과 일본 우익의 북한에 대한 온갖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만경봉호를 타고 또 하나의 조국 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아이들의 모습은 생기발랄함과 자신감 그 자체였다. 무엇이 우리학교 아이들을 그토록 변하게 한 것일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우리말과 우리 음식, 우리 노래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조선의 태양은 일본 땅에서 바라보는 태양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정말 조선의 태양은 일본보다 더 붉고 빛나는 것일까.

아이들은 조선 사람의 눈빛 또한 다르다고 하였다. 아이들의 조국 방문을 안내한 ‘아바이’와 ‘누님’을 비롯한 북쪽에서 만난 동포들의 눈빛이 맑고 빛난단다. 정말 그랬을까.

아이들은 북의 동포들과 만남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던 것일까. 우리말보다 일본말로 훨씬 더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들이 경제대국 일본 땅에서 살며 연일 북조선의 미사일, 핵 위협, 납치, 기아와 인권유린의 실상을 홍보하는 광기의 언론보도에 동화되지 아니한 채 도대체 북쪽으로부터 보고 얻은 것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세습독재의 기아와 비참한 인권유린이 횡행하는 북조선의 실상을 보지 못하였기에 눈감았던 것일까.

 

 

woori02.jpg사진 출처 -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 홈페이지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해외 청년학생통일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함께 대회에 참여한 재일조선인 민족학교 아이들이 문화공연에서 합창을 하였다. 서툰 발음이었지만 아이들이 부른 노래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였다.

고난의 행군 시절 북쪽 동포들이 마음을 모은 구호의 하나일 터인데 아마도 재일조선인으로 일본 땅에서 핍박을 받고 자라나는 민족학교 아이들에게도 큰 공감이 가는 노래였던가 보다. 태어나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입장에서도 북에 대한 의구심과 경계를 푸는 훌륭한 모토로서 지금도 새겨져 들린다.

그런 공감이 아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일 게다. 허구적 인식과 그릇된 편견을 바꾸고 민족적 정체성을 이어가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리라.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감을 회복하였을 것 같다.

 

 

그들은 우리, 우리는 그들

일본 땅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출세와 경쟁, 이를 위해 민족성을 포기하기보다 차별 속에서도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문화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이어가는 훌륭한 선생님과 아이들, 재일조선인 동포들의 교육공동체의 모습은 진한 감동이었다. 인간다운 삶,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참교육 공동체의 삶으로 다가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동무가 되어 조언을 주고 가르침을 받으며 이끌어 주었다. 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 모두가 ‘우리학교’에서 지낸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며 한결같이 흘린 눈물이야말로 재일조선인으로서 참된 삶을 살아가도록 깨우쳐준 영원한 모교 ‘우리학교’에 아이들의 진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진 고귀한 눈물이었다.

‘우리학교’를 보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은 공감도 공감이거니와 자성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토록 순박하고 아름답고 꿋꿋하게 우리를 지켜나가는 같은 민족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한 데 대한 자성이었다.

무엇인가를 가슴 속 깊이 가득 얻을 수 있는 감동의 영화다. 또 볼 작정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