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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홍승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5:28
조회
381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 도법스님의 탁발순례 동행 후기

지난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1주일 간 휴가를 내어 중3인 아들과 함께 도법스님의 탁발순례 강원도 태백일정에 합류하였다.

2004년 3월 1일, 당시 북핵 실험으로 (미국 주도의)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었을 당시, 전쟁을 막기 위해 온몸을 내어던질 사람이 10만 명만 있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생명평화결사’를 조직하여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 시작한 탁발순례 여정은, 이제 농촌을 비롯한 각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 지역 현안이나 고충 등을 경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가지며 전국을 거의 다 돌고, 올해 강원도 지역과 내년 경기 · 서울 지역만을 남기고 있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한 시간도 별로 없었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더더욱 함께 할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방학이 끝나기 전에 모처럼 한 주간 휴가를 내서 아들과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탁발순례에 동행하게 되었다.

한 번 스치듯 지나가기만 했던 태백은 과거 광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최근에는 정선에 카지노가 들어서서 잘 알려진 지방 소도시이다. 한참 석탄이 국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일 당시 이곳 태백지역(정확히는 황지, 철암, 장성, 도계, 사북)의 인구는 13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5만 명 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석탄산업을 대체할 지역경제와 날로 줄어드는 인구 문제가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라는 몸자보를 걸치고 태백시 한복판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에서 생명평화기원제를 100배 절 명상으로 드리면서 시작된 순례 일정은 이후 아침 100배 절 명상(약 35분 소요)으로 시작하여 하루에 약 40~50리 정도를 걷고, 지역의 기관이나 단체 및 농민들과 만남 등으로 진행되었다. 참회와 서원의 내용이 낭송되는 가운데 처음 올리는 100배의 절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체투지를 통한 ‘하심’이 발심하면서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얼굴 가득하게 되었다.

 

070828web01.jpg강원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고 있는 탁발순례단이 22일 한강 발원지
강원 태백 검룡소에서 생명평화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태백생명의숲’과 ‘전교조 태백지회’, ‘의제21’ 등의 단체에서 한 주간의 일정과 길 안내 등을 도맡아 주셔서 순례단 일행은 비교적 아주 편안하게 순례를 하였다.(매일 아침 차가운 생수와 간간이 간식거리 등을 준비해 주시는 등 너무 감동적인 대접을 받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100배 명상을 하고 아침은 준비해 갖고 다니는 누룽지를 쑤어서 눌은밥으로 해결하고, 걷다가 점심과 저녁은 일체 주는 대로 먹고 저녁 명상을 한 뒤 정리 시간을 가지고 교회나 성당, 또는 폐교나 단체 사무실 등에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대략 11시 내외. 과히 많이 걷는 것은 아니지만 뙤약볕 속에서 꽤 빡빡한 일정들을 소화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쉴 시간들이 별로 없는 편이어서 제법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도로를 걸을 때는 마주 오는 차량과 마주 대하는 도로 왼 편에서 운전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걸었다. 왕복 2차선 국도는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마주 오는 운전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는 것이 곧 평화의 정신이라고 도법스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의 80% 이상의 차량 운전자나 동승자들이 반응을 보인다. 함께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만면의 미소와 더불어 박수까지 쳐주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히 운전자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손을 흔들게 되었고 그 숱한 손 흔드는 일이 결코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소도’와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는 단군 제사단인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 등 그 의미가 자못 깊은 명소들이 의외로 많은 태백이었다.

천제단에서 내려다보이는 비행기 사격장. 매향리 사격장이 없어진 이후 부쩍 비행기 출격이 많아진 것 같다는 ‘태백생명의숲’ 관계자 이야기다. 이 사격장 자리에 있던 마을은 이 일대가 ‘소도’였던 지역으로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핍박을 받으며 지내왔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 또한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천제단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장군단’은 그들이 독립을 기원하며 수년 동안 몰래 축조하였다는데 일본 패망 3년 전에 마지막으로 독립기원제를 지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옥고를 치른 마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태백 문화원 사무국장의 증언) 그러던 그들이 한국전쟁 후에는 마을을 송두리째 비행기 사격훈련장으로 내주게 되었으니 오랜 기간 핍박과 설움만 받아온 슬픈 마을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는 끝내 보상금 수령을 거부한 이도 있다고 한다.

이 비행기 사격훈련장 때문에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이 산의 야생동물들이 비행기 소음으로 얼마나 몸살을 앓다가 떠났을까?

서학골이라는 데를 잠시 들렀다. 산 정상에서부터 도무지 얼마나 되는 면적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숲을 파헤쳐 온통 누런 상처투성이다. 태백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공동으로 2~3천억 원을 투자해 골프장과 스키장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지방 자치단체들이 경제적 목적으로 이처럼 레저단지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는데 전 국토의 레저단지화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그 수가 지금 계획처럼 늘어나게 된다면 분명 적자에 허덕이다가 문 닫을 곳도 많이 생길 텐데 그때까지의 적자와 투자금액은 어디에서 벌충할 수 있을런지... 결국 지역경제가 더욱 휘청하게 되는 일이 되지는 않을는지....

풍력발전기로 유명하다는 매봉산 정상엘 올라갔다. 멀리서 볼 때는 산 정상까지 온통 목초지들이 펼쳐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그게 이 지역의 가장 큰 작물인 배추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순례를 시작하면서부터 이곳이 고랭지배추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배추밭이 생각 밖으로 많은 것에 은근히 놀라기 시작하다가 가파른 산 중턱까지 나무들을 베어 밭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심하다 싶었다. 그러나 매봉산 정상 가까이까지(약 해발 1,200미터) 100만 평 내외의 배추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거의 경악할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걸까?

백두대간 정상에 대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당국의 몰지각을 비판하는 ‘태백생명의숲’ 사무국장의 안내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 눈은 배추밭을 향하게 된다. 이 배추밭 고랑에는 풀 한포기 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제초제와 농약을 치면 이럴까? 경사가 심한 이 배추밭의 농약들은 또 비가 오면 얼마나 순식간에 하천으로 유입될까?

 

070828web02.jpg지난 5월 괴산 감물면내를 지나 농장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순례단이 걷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전날 밤 지역 농민과의 대화의 시간에 도법스님께서 ‘우리가 약 5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100배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못살겠다며 아우성이지 않느냐? 지금처럼 개발과 성장을 부르짖다가 과연 지금보다 100배 잘 살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과연 행복하다고 하겠는가? 외려 더 큰 욕심과 욕망으로 더욱 피폐해지지 않겠는가? 문제는 만족의 기준이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때 일부 농민들의 반응은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도법스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기는커녕 코웃음 치는 듯했다. 수만 평의 배추밭 경작을 통해 평균 4년에 한 번 대박을 터뜨리면 억대를 만지게 된다는 이들 ‘대농(大農)’들에게 실상사 근처에서 유기농 농사로 많아야 한 달 평균 100만원을 버는 농민들이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그날 그래도 도시로 돈 벌러 나갔다가 다시 귀농한 마을 청년(그래도 50대 초반이다)의 ‘돈 벌자고 도시 생활을 해 보았지만 사람 살 곳이 못되었다. 이제부터 돈을 좇기보다 그저 욕심 안내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고자 한다.’라는 말미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면 지나친 농촌에 대한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하루는 철암어린이도서관엘 갔다. 상근자 두 명과 자원봉사 대학생들, 그리고 밝은 표정의 아이들이 우리를 맞았다. 최근 신축이전한 도서관을 짓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물을 보고 그곳에서 제공한 점심을 맛있게 먹은 다음 우리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 부푼 가슴들을 안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날 한강 발원지라는 검룡소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생명평화기원제를 드리며 일주일 간의 태백지역 생명평화순례 일정은 막을 내렸다. 나는 아이와 함께 서울로 향했지만 일행은 이내 다음 구간인 삼척으로 향했다. 한 주간 태백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한 소중한 기회였다. 사람들이 떠나고 젊은이가 지역에서 보란 듯이 정착할 만한 일자리가 잘 안 보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지방 소도시의 척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지역을 사랑하며 잘 지켜내고자 애쓰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기에, 태백지역은 이내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살맛나는 곳이 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는 선진국인데도 여전히 대선주자들은 성장과 발전을 통한 선진국 진입을 구호로 외치는 이상한 현실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이지만 사회안전망을 비롯한 복지정책, 교육인프라,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정신 등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일진대 좀더 성숙한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할 텐데, 사람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발전 없이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심어놓는 이 사회는 한참 비정상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과 지역 사람들이 더 이상 개발과 발전이라는 끝 모를 성장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속히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다시 한 번 이 염원을 되뇌어본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