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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진주만 폭격 : 大韓辯協 (김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54
조회
329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7. 3. 대한변호사협회는 ‘흔들리는 촛불 너머 길 잃은 법치주의를 우려한다’는 대단히 감성적인 단어의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대한변협은 이 성명서에서 “ -- 사태는 광우병 확산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불안 때문에 식탁의 안정성 확보를 내세우며 광장으로 모였던 시민들의 촛불집회의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헌법적 절차에 의거해 출범한 합법정부에 대하여 퇴진을 요구하는 현재의 사태야 말로 오히려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헌정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엄정대처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명서는 다음과 이유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개탄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먼저 대한변협 집행부의 역사인식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변협 홈페이지에는 대한변협의 업적을 자랑하면서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자 처벌 요구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변협 집행부의 한심스럽고 천박한 역사인식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로 ‘광주사태’ 이상의 단어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런 천박한 역사인식 시각으로는 오늘의 촛불광장이 헌정질서 파괴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률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들인데 이미 대법원 판결로도 천명된 광주민주화 운동과 항쟁을 아직도 전두환ㆍ노태우식의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자들이 대한변협의 집행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성명서 바탕에 깔려 있는 비극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과정 또한 민주적인 의견수렴절차, 적정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각 지방변호사회의 의견 수렴을 요구하고는 의견 수렴 마감시간도 되지 않아 부랴부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법률 전문가 집단을 대표한다는 대한변협에서 민주주의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적정절차를 무시한 범법집단으로 돌변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사다.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 가치를 숭상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논하면서 거꾸로 절차적 민주주의 원리를 짓밟고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집단이 되고 싶어 한다면, 이는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셋째, 이들 성명서는 헌법의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는 반 헌법적 행위다. 현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선택으로 출발한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으며, 당장 이명박 대통령을 하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왜 촛불들은 ‘명박퇴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겠는가. 그 원인은 전적으로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아무런 실효성 있는 대책도 내놓지 않는 현 정부에 극도로 분노한 나머지 나온 감정의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인다는 점이다.

‘명박퇴진’이라는 구호가 진심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보호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모든 권력은 총구가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우리 헌법의 요체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을 무시ㆍ폄하하는 상황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현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적 표현행위인 것이다. 현재의 촛불 시위 구호들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영역이라는 것을 법률가 집단으로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대한변협이 헌정질서 파괴 운운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진주만 폭격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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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국과 관련해 귀 회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니
7월 4일(금) 18:00까지 의견을 정리해 보내 달라”는 공문
사진 출처 - 한겨레



  1984년 미 공화당 전당대회 때 국제청년당이라는 좌익단체가 레이건 행정부의 외교정책과 대기업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가두시위를 벌이면서 존슨이라는 청년이 국기게양대에 걸린 성조기를 끌어내려 석유를 뿌리고 불태운 사건으로 기소되었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미 연방대법원은 성조기를 훼손하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보호를 받는 행위로 판결하며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 판결에서 ‘강요된 침묵이 아닌 더 많은 표현’을 옹호하였고, ‘성조기를 훼손하는 사람들조차도 법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이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바로 그러한 관용이 성조기가 상징하는 미국사회의 근본이념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미국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숭상하는 미국의 이런 힘과 정신을 왜 법률가 집단인 대한변협은 외면을 넘어서서 오히려 짓밟으려고 하는가. 집회를 통한 표현의 자유 즉 민주주의 혈관을 짓밟아 막는 행위는 대한변협의 치욕스런 역사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평가될 것이다.

넷째, 대한변협은 기본적 인권옹호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다. 성명서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법치질서 확립’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왜 1천명의 시민이 다치고 연행되었으며,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하던 한 변호사가 그 어떠한 폭력행위를 한 바도 없는데 경찰로부터 방패로 머리를 찍혀 두개골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침묵하는가. 이것이 인권옹호 단체가 할 일이며, 균형 잡힌 시각인가. 대한변협은 검찰이 아니다. 대한변협 회장이 1987년 6월 국민항쟁 당시에 대검찰청 중수부 과장으로 근무한 전력이 있어도 지금은 검사 신분이 아니다. 그런데 대한변협 회장은 검찰과 입을 맞춘 듯이 똑같은 소리를 내는가. 대한변협은 청와대 소속도, 한나라당 소속도, 검찰 소속기관도 아니다. 사회정의를 무시하고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는 반 헌법적이고, 편향적인 행위는 국민들에게 법조인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키는 것이다.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연행과 구속을 일삼는 수단으로 국민의 입과 귀를 막으면서 정의 없는 질서를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고사시킨다. 대한변협은 본래의 임무로 돌아와 자중자애하고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민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변협이 살고, 법률가도 살고, 국민도 사는 길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