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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우리 가슴 속에 남겨 놓은 흔적 (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52
조회
262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촛불집회가 두 달을 넘겼다. 10대 여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 이 모임이 이토록 오래 가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여학생 몇몇의 만남은 수십만 시민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몇 번의 곡절을 겪으며 촛불은 두 달 너머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촛불 집회에 대해 많은 평가와 진단들이 나온 바 있지만 내가 보기에 촛불 집회의 가장 큰 의미는 그것이 많은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는 산 교육장이자 체험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나 싶다. 우리 사회가 오랜 군사 독재의 수렁을 헤쳐 나와 민주화를 이룩하기는 했지만 사실 민주화 이후 지난 20년의 세월은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했다기보다 차라리 부르주아 형식 민주주의의 한계만을 도드라지게 느끼게 했던 세월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다고 해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가치가 함께 민주화되는 것이 아님을 지난 세월 우리는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늘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경제라는 요구 앞에서 좌절해 왔고 민주적 가치는 곧잘 냉소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민주주의보다 경제의 양적 성장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간 듯 했다. 이명박의 당선은 정말로 우리 사회가 다시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했다.

그런데 어린 소녀들의 촛불이 이 모든 흐름을 순식간에 뒤바꾸어 놓았다.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하며 촛불을 켜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권, 그것이지만 이는 곧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라는 보편적 문제와 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국민의 건강권 따위를 아주 쉽게 내팽개치는 정권의 실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정치적 주권과 국가 권력에 대하여, 요컨대 민주주의에 대하여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난 두 달간의 촛불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성과는 조중동의 실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언론으로서의 기본 윤리조차 깡그리 버린 채 위선적인 정치 집단으로 변한지 오래인 조중동 부자신문들의 실체를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야말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안티 조선 운동이 시작된 지 10년 남짓 되었다지만 그 10년 동안 이룬 성과보다 지난 두 달 동안 이루어진 변화가 훨씬 크다. 시민들은 조중동을 비판하는 데서 나아가 그 신문들에 광고를 낸 기업들을 대상으로 광고 거부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의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게시글을 삭제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그런 식으로 조중동 거부 운동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섣부른 대응은 현 정권과 조중동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만을 더욱 키우게 될 공산이 크다. 지난 두 달의 촛불을 경험한 시민들은 이미 과거의 시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말마다 수많은 인파가 시내 한 복판에 모여 밤을 새워 노래하고 토론하는 국민MT를 경험한 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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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승리선언 범국민촛불대행진'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촛불 집회의 향방을 두고 말들이 많다. 심지어 벌써부터 그것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는 담론까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이명박 정권이 수많은 시민의 목소리를 짐짓 못들은 체 하고 있고 게다가 5공 시절의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을 곳곳에서 목도하게 되는 지금, 촛불 집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는 참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촛불을 그저 소고기 문제의 틀 안에 두는 것도, 그 이상으로 확산시키며 정권 퇴진까지 가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촛불 집회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 나는 지난 두 달간의 촛불은 우리 사회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엄청난 흔적을 남겨 놓았다고 생각한다. 집회 현장에서 노래로 울려 퍼지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각성이 그것이고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이 세상을 바꿀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라는 사실에 대한 새삼스러운 확인이 그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