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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했나? (2)(권혁용)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9-15 16:42
조회
300
권혁용/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국 민주주의는 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 해왔는가? 지난 칼럼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시민의 수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공급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입법과 정부 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회의원과 정당, 그리고 정부가 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불평등을 완화할 의지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여기에는 정치적 대표성(political representation)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놓여 있다. 주권자인 시민을 대표해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은 과연 주권자인 시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국회의원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한국의 국회는 고소득층과 고학력층 시민을 상대적으로 더 잘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 민주주의에서 고소득층과 고학력층이 정치적으로 더 잘 대표되는 데에는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이라는 구조적 조건이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은 능력과 정보, 사회적 네트워크, 돈과 시간 등을 포함한다. 첫째, 고소득층과 고학력층은 저소득층이나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에 비해 정치·사회·경제적 현안에 대한 자신 뜻과 선호를 더욱 분명하게 형성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가지고 있다. 반면 저소득층은 노동조합과 같은 결사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요구를 정치적으로 표출할 기회와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둘째, 고소득층과 고학력층은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인을 직접 접촉할 기회도 더 많다. 이러한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와 요구를 정치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셋째, 고소득층과 고학력층은 저소득층보다 정치인에게 공식적인, 그리고 어쩌면 비공식적인 후원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고 선거 캠페인에 이바지할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자원의 불평등은 정치인이 고소득층과 고학력층의 이해와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국회의원 자신이 고소득층이고 고학력층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더 잘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불평등한 반응성(unequal responsiveness), 즉 저소득층의 이해와 요구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면서 고소득층의 요구에는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Bartels 2008)는 『불평등한 민주주의(Unequal Democracy)』에서 미국 상원의원들이 자신이 대표하는 주의 저소득층 여론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으나, 고소득층의 여론에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반응했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저소득층의 여론에 대한 무시가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 모두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고소득층 여론에 대한 높은 반응성은 특히 공화당 의원들에게 뚜렷하게 나타났고, 민주당 의원들의 반응성은 그보다 훨씬 낮았다.
정치적 대표성은 크게 기술대표성(descriptive representation)과 실질대표성(substantive representation)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기술대표성은 말 그대로 “국민을 닮은 국회”를 구성하는 문제다. 심상정 전 의원이 주장했던 “국민을 닮은 국회”라는 표현이 대표적인 예다. 국민의 절반이 여성이라면 국회 의석의 절반을 여성 의원이 차지해야 한다. 국민의 20%가 청년 세대라면 국회 의석의 5분의 1 정도는 청년 세대 의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국민의 30%가 생산직 노동자라면 국회에도 그에 상응하는 비율의 생산직 노동자 출신 의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세대와 성별, 직업, 계층을 정확하게 비례해서 국회에 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국민을 닮은 국회’라는 원칙은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 대표하는 사람이 대표 받는 사람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면, 과연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이해관계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대표할 수 있을까?

22대 국회의원 연령별/그래픽=김현정 출처: 머니투데이
그렇다면 한국 국회는 얼마나 한국 국민을 닮았을까. 2023년 국회사무처 자료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약 90%가 50대 이상이다. 여성 의원의 비율은 19.1%에 불과하며, 이들 역시 대부분 50대 이상이다. OECD 2023년 자료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 부처 각료들의 평균 연령이 46.1세인 데 비해 한국은 60.8세였다. 직업별 대표성의 불균형은 더욱 심각하다. 2020년 KBS 자료가 보여주는 직업 비례성, 즉 전체 국민 가운데 특정 직업군이 차지하는 비율과 국회의원 가운데 해당 직업군이 차지하는 비율의 격차를 보면, 20대 국회에서 검사는 무려 545배, 판사는 494배, 변호사는 176배, 언론인은 105배, 교수는 95배 과대표되었다. 반면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 자영업자는 크게 과소대표되었다. 경제적 배경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21대 국회의원의 평균 순자산은 안철수, 박덕흠 의원과 같은 초고자산가를 제외하고도 34억 8천만 원에 달했다. 같은 시기 국민의 평균 순자산은 4억 5천만 원이었다. 유권자 평균보다 훨씬 부유한 국회의원들이 생계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시민들의 삶의 무게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나마 선거철이 되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국회는 화이트칼라 국회이고, 고소득층 국회이며, 남성·장노년층 국회다. 대한민국의 국회라는 의미에서 대한민국 국회일 뿐, 대한민국 국민을 닮은 국회라고 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정치적 대표성은 실질대표성의 문제다. 국회의원들은 주권자인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실제로 입법과 의정활동에 얼마나 반영하는가? 다양한 사회계층의 목소리 가운데 어느 계층의 요구가 더 많이 반영되고, 어느 계층의 이해는 상대적으로 무시되는가? 불평등한 반응성에 관한 수많은 연구는 저소득층이나 중산층보다 고소득층, 그리고 직업지위나 교육수준이 높은 시민들의 선호가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Dahl 1971)이 민주주의에 관한 고전적 저작인 『다두정(Polyarchy)』에서 제시한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과 대비된다. 달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정부가 정치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시민들의 선호에 지속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한국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을 정치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간주하는가? 모든 시민의 이해와 요구에 평등하게 반응하는가? 만약 한국 정부와 국회가 노동계보다 재계의 이해와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입법에 반영한다면,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요구를 더 많이 정책에 반영한다면, 임금·소득·자산 불평등은 쉽게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정규직 노동자 평균임금의 약 절반 수준이고, 여성 노동자의 임금이 남성 노동자의 약 65%에 불과한 현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통해 일정 부분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간제 교사와 정규직 교사가 사실상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에서 차별받고, 임금 이외에도 휴가와 휴직 등 여러 권리에서 차별받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산 불평등 역시 마찬가지다. 자산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조세·주거·복지 정책과 입법 수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정책을 선택하고 어떤 정책을 포기할 것인지는 결국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결국 ‘한국 민주주의는 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해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정치적 대표성의 불평등, 그리고 시민들의 요구에 대한 불평등한 반응성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지 모든 시민에게 한 표씩을 주는 제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동등하게 들리는가, 그리고 그 목소리가 실제 정책에 얼마나 동등하게 반영되는가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권혁용 위원은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