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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고시와 대치동 캠핑카(강대중)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3-25 10:08
조회
492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이른바 ‘4세 고시’를 금지하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개정안이 3월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올해 9월부터는 학원 운영자가 유아를 대상으로 모집이나 수준별 반 배정을 목적으로 시험·평가를 실시하면, 영업정지나 과태료 처분할 수 있게 됐다. 유치원식 영어학원에서 치르는 레벨 테스트, 그걸 준비하는 학원에 들어가려고 치르는 시험을 지칭하는 4세 고시를 입법으로 규제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험을 금지한다고 선발이 사라지지 않는 데 있다.
지난 1월에는 ‘대치동 캠핑카’가 화제가 됐었다. 겨울방학 동안 대치동 학원 특강을 듣는 아이를 실어 나르는 부모가 도로변에 캠핑카를 주정차해둔 모습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아이가 학원과 학원 사이 틈나는 시간에 캠핑카 침대에서 눈을 붙이고, 부모는 부모대로 캠핑카에서 일도 보고 쉬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정차 위반으로 적발되어 과태료를 내더라도 인근에 오피스텔을 빌리는 것보다 캠핑카가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캠핑카 이용은 과잉 경쟁의 한 풍경이면서도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합리적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4세 고시나 대치동 캠핑카는 일부 중상류층이 시간과 자원을 총동원해 계층 재생산에 나서는 병리적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특정 학교와 학과, 전공 졸업장이 안정적인 직업 진입의 보증 수표가 되면서, 그 선발의 진입구를 점유하는 데에 유리한 전략적 행위의 목록에 이제 캠핑카까지 한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입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행위 목록에는 다른 것도 많다. 한동안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었다. 위장전입은 불법이었으나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자녀 교육 목적이라면 관대하게 보자는 일종이 타협이 이뤄지기도 했다. 과외 금지 시절의 비밀과외나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부모 찬스 스펙 쌓기도 어쩌면 그런 관대함으로 용인됐던 전략적 행위가 아니었을까.

반드시 정답이 있어야만 하는 시험과 실수하지 않는 것도 실력으로 간주하는 경쟁의 포로가 된 입시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동원하는 이 전략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신호로 작동하고 있다. 상류층이 주도해서 “이 경쟁은 빠를수록 유리하다”거나 “늦으면 따라잡기 어렵다”라는 불안 신호를 증폭한다. 불안 신호는 디지털 시대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타고 중산층과 서민에게로 빠르게 전달된다. 자녀가 계층 사다리 아래로 추락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중산층의 심리를 사로잡고 자극한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그 불안을 원료로 다양한 채널로 차별화한 가격의 새로운 상품을 끊임없이 공급한다.
구매력이 낮은 서민 계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그 상품 공급에 참여해 왔다. 교육부가 재정을 투자하는 EBS 수능방송과 문제집은 대입 준비 필수 서비스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지 오래다. 일부 학교에서는 수능방송을 시청하고, EBS 문제집을 교과서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서울시청 외벽에 ‘서울런’ 수강생의 명문대 입시 성공 현수막이 걸리기 한참 전에 이른바 ‘강남인강’이 유행했었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자치단체들이 서울의 유명 학원 강사와 입시 컨설턴트를 초빙해 특강을 개최하는 일도 이제는 낯익은 풍경이다. 공공이 제공하는 이런 서비스는 불안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오히려 제도화된 형태로 불안을 재생산하는 데에 일정 부분 기여도 했을 것이다.
자녀를 4세 고시로 내몰고, 캠핑카에 태워 대치동 학원을 오가는 부모는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어쩌면 극소수일 것이다. 4세 고시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이 때부터 상품화된 시험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4세 고시를 금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입시 경쟁의 불안 신호가 증폭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불안 신호는 금지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불안 신호가 생겨나고 증폭되는 조건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조건을 바꾸는 해법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사회의 신호를 바꾸는 것이다. “일찍 경쟁을 시작해야 살아남는다”가 아니라 “너에게는 너에게 맞는 때와 속도가 있다” “사다리 아래에는 아주 단단한 그물이 있다”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야 한다” “입시는 교육의 아주 작은 부분이며, 교육의 더 큰 목적은 더불어 살아가는 인격과 소양을 갖추는 것이다”와 같은 신호를 학교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이 생산하고 발신하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그 신호를 신뢰하여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고 지속하는데 누구보다도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사회의 신호는 우리가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