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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차 수요대화모임(10.08.27) 정리 - 김두식(경북대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0:58
조회
376
주류와 인권

김두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의는 <우익청년 윤성호>와 <두근두근 시국선언> 두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랜만의 강연이다. 능력은 부족한데 일이 많아서 이런 식의 강의는 늘 거절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인권연대에 엮였다. 물론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왔다. 인권운동을 하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로 살려면, 정해진 것 이상의 논문을 써야 한다. 그런데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에 몇편의 논문을 실어야만 하는 지금의 시스템에는 영 적응하기 어렵다. 학술 논문이란 게 기껏해야 쓰는 자신과 마누라, 그리고 ‘저 놈, 두고 보자’하고 벼르는 사람 정도만 읽는 글이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조금만 바꾸자고 생각했다. 겨우 몇사람만 보고 마는 글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약간이라도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작업은 그동안 진행했던 몇권의 책을 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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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는 2004년 <헌법의 풍경>을 쓴 이후,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를 썼다.


내가 무슨 전문적인 고발꾼도 아닌데, 법조계와 한국 교회의 내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을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강한 비판은 없었다. 센 비난이 좀 있었지만, 그건 대개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여기 오신 분들도 그럴 것 같은데, 내 책을 읽든, 이렇게 아주 가끔 강연을 할 때 모이는 분들은 대개 비슷한 분들인 것 같다. 책이든 강연이든 나를 찾는 분들은 대체로 내 이야기에 동의할 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아무리 거창한 이야기를 해도, 그건 ‘찻잔 속의 태풍’일 가능성이 높다. 변화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 나와 전혀 딴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관계맺고 소통하는데서 시작될 수 있다.

최근에 낸 <불편해도 괜찮아>를 보고 몇분이 지적한 것처럼 나는 어떤 면에서 보면, 주류로서 살아왔다. 하지만 난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통해서 친해질 수 있고, 이야기를 통해 변화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불편해도 괜찮아>도 이야기의 힘을 믿고 쓴 것이다.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으려고 쓴 것이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까놓고 이야기하다보면 어쩌면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어디선가 굴러온 사람 취급을 했다. 내 말이나 글의 내용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그런 식으로 비난할 땐, 사실 할 말이 없다. 응대하기도 어렵고, 응대할 생각도 없어진다. 그맘때 윤성호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윤 감독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약간의 삐딱함을 보여주면서도 주류로 남고 싶은 마음도 숨기지 않는다.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어떤 힘이 느껴졌다. 윤 감독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윤성호 감독처럼 나도 늘 내가 우익인지, 좌익인지 고민하고 있다. 남들은 나를 복음주의자, 평화주의자, 다원주의자로 비판한다. 말이 좋아 다원주의지, 사실 열심히 믿는 사람들에게 다원주의자란 사탄이란 말과 동의어쯤 된다. 약간 부드러운 표현 정도일 뿐이다.

나는 그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다. 좌익을 옹호하기만 해도 좌익으로 취급받는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좌와 우가 어떻게 나뉘는지도 의문이지만, 난 그저 교회 열심히 다니고, 예수 잘 믿으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정부가 북한의 트위터 계정을 막는다고 호들갑을 떤다. 국민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생각보다 탄탄하다. 만약 ‘어버이’들이 광화문에 가스통과 함께 인공기 들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웃기는 모습일 거다. 그러면 그냥 웃고 끝내면 된다.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나는 오히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다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인권이 보수정권에서 획기적으로 신장되는 그런 모습 말이다. 2004년에 경험한 것처럼 민주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들고 나오면 난리가 난다. 그게 아니라, 한나라당의 홍준표, 주성영 의원 같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래도 ‘어버이’들은 반발하겠지만, 실제로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그 어버이들도 걱정할 건 없다. 그분들이 어딜 가시겠나, 진보정당이나 민주당으로 갈 수도 없으니, 그냥 도로 한나라당을 지지할 거다.

미국에서도 중요한 인권정책의 진전은 공화당 정부의 몫이었다.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는 차별이라고 결정한 브라운 대 토피카교육위원회 사건은 연방대법원의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에서 1964년에 시민법이 통과된 것도 공화당의 역할이 컸다. 만약 한나라당이 미국의 공화당처럼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고 인권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글쎄 아마 30년쯤 장기집권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나라당 정권이 실질적으로 집행하지 않는데서 멈추지 않고, 사형제도 자체를 없애버리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도 인정하면 어떨까? 사실 이런 문제는 양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문제다. 마음만 바꿔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쉬운 문제다. 하지만 한나라당 등 우파가 실제로 그렇게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마음만 바꿔 먹으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지만, 그건 그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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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민이다. 한나라당의 회심을 바라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리 기본적인 것이라도 인권의 진전을 위한 노력은 힘겨운 투쟁을 요구한다. 지금처럼 자기들끼리만 모이고, 자기들끼리만 토론하고, 자기들끼리만 분노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파들은 트위터가 좌파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걱정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걱정할 게 없다. 트위터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싸움만 박터지게 진행된다. 내가 볼 땐, 비슷한 사람들인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람들은 정말 피터지게 싸운다. 한홍구는 한겨레에 나온 ‘놈현, 관장사’란 표현 때문에 하룻밤에 10만 명의 안티를 만들었단다. 하지만 한홍구처럼 진지하게 노무현을 생각했던 사람은 별로 없다. 노무현 서거 국면에서 한홍구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말 한마디에도 동지와 적이 갈린다. 이게 소위 좌파들의 실상이다. 남을 비판하는 훈련이 잘 된 탓인지, 아니면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에도 발끈하고, 윤성호 감독처럼 자기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일에는 정말 익숙치 않다. 찻잔 속에서 자기들끼리 정말 열심히 싸운다. 자기들끼리는 진중권과 김규항을 들먹이며 싸우지만, 정작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진중권이 누군지도 모른다. 내가 일하는 대구에는 한겨레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경북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운동하는 분들을 보면, 죄다 형 아니면 아우로 통하는 걸 본다. 과거 학생운동 때부터의 인연이 이어진 거다.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가끔은 걱정도 된다. 한나라당은 경선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수혈하면서 끊임없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당장 다음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 건지조차 불투명한 야당은 오히려 느긋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 특히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마음을 열고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상대방의 이야기도 인정해주면서 만났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 가진 사람들끼리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편에 속한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불편해도 괜찮아>의 맨 앞에는 교육 문제를 다뤘다. 보수나 진보 할 것 없이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니까 그랬다. 관심이 큰 문제부터 시작해서 보수든 진보든 함께 우리 모두의 인권문제를 이야기해보자는 뜻에서였다. 우리 사회는 너무 둘로 쪼개는 걸 좋아한다. 많이 만나서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면 둘만이 아니라, 더 잘게 쪼개질 수도 있으며, 또 인권문제 같은 기본 문제에서는 더 많은 합일점을 찾을 수도 있다.

주류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주변을 항상 점검하고 돌아보며 약자의 입장에서 살아간다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요약 : 홍수진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