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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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제도 폐지’ 지금도 너무 늦었다(경향신문, 2017.04.0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5 13:00
조회
100
의무경찰은 집회·시위 진압, 경비활동과 여러 허드렛일을 하지만, 원래 설치 목적은 전혀 다르다. ‘의무경찰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의무경찰대를 설치한 제1목적을 무장공비를 비롯한 간첩의 침투를 포착하여 막고 섬멸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병역의 의무 때문에 군대 대신 경찰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직업 군인들조차 쉽지 않을 활동을 한다는 거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법은 그렇다.
전투경찰제도는 ‘공비 토벌’을 위해 만들었다. 한국전쟁 때 작전지휘권을 넘긴 이승만은 미군의 승인 없이 움직일 전투부대가 필요했다. ‘공비 토벌’이 끝나자 전투경찰도 사라졌다. 이걸 되살린 건 박정희였다. 1970년 박정희 정권은 대간첩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며 ‘전투경찰대 설치법’을 만들었다. 1980년 전두환은 여기에 ‘치안업무보조’를 넣어 지금의 시스템을 완성했다. 박근혜 때는 법 이름만 ‘의무경찰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로 바꿨다. 전투경찰이 없어졌다는데, ‘전투’라는 말을 ‘의무’로 바꾼 것 말고는 달라진 건 없었다.

대간첩작전 운운하나, 실제로는 시위 진압을 위한 특별한 전투부대였다. 법률 근거는 ‘치안업무보조’지만, 실제 현장에선 의경이 앞에 서고 경찰관이 거꾸로 의경을 보조하고 있다. 방패를 들고 물리적 충돌을 맨몸으로 막아내는 건 의경의 몫이다. 일선 군부대가 대개 그렇듯, 기동대도 의경들에 의해 굴러간다. 각종 행정 업무, 운전, 정비, 시위 진압 등이 모두 의경의 몫이다.

치안활동에는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4년제 대학의 관련 학과를 나와 2~3년 넘게 채용시험공부를 하고, 어렵게 합격하면 34주 동안 합숙교육을 받아야 한다. 순경으로 임용된 다음에도 실무를 익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업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치안활동은 21개월 만 근무하는 의경들이 보조할 수 있는 활동일 수 없다. 예전과 달리 교통단속이나 불심검문 등을 의경에게 맡기지 못하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단기간에 복잡한 법률적 이해와 인권의식까지 갖추긴 힘들기 때문이다.

인력이 부족해 의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4년 동안 경찰관 1만2000명을 증원했다. 다른 공공부문은 인력난에 시달리는데, 유독 경찰청만 예외였다. 치안 수요가 넘쳐 증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근거는 임기 중에 경찰관 2만명을 증원하겠다는 박근혜의 공약이 전부였다. 자치경찰이 아닌 전형적인 국가경찰시스템에선 경찰관이 늘어나는 만큼 정권의 힘이 세진다. 놀랍게도 문재인은 박근혜보다 많은 3만명 증원을 공약했다.

경찰관이 대폭 늘었는데도 여전히 의경부대를 운영하는 까닭이 뭘까? 그건 의경이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의경은 시위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을 때, 맨 앞에서 몸으로 막는 일부터 경찰의 온갖 잡무를 전담하고 있다.

경찰관들이 일반 공무원들은 상상도 못할 호사를 누리는 것도 의경 때문이다. 경찰의 주요 간부들은 의경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닌다. 의경을 개인 기사처럼 부리는 거다. 기관장이면 부속실에 심부름 전담 의경이 배치된다. 개인 기사와 개인 비서를 두는 호사를 누리는 까닭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의경들 사이의 구타나 가혹행위는 많이 사라졌지만, 요즘 의경들은 경찰관에 의한 인권침해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속옷만 입은 대원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환자들의 외부 진료를 막고, 단체 기합을 받았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의경들이 모욕과 폭언, 폭행을 당했다거나 경찰관들이 직권을 남용하고 직무는 유기하며 사적 지시를 남발했단다. 그렇지만 부조리를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등 인권문제도 심각하다. 인권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경찰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반복하지만, 인권침해도 반복되고 또 사과도 반복된다.

또 다른 쟁점은 경찰대학교다. 수업료와 각종 비용을 전부 면제받고, 피복이나 교재도 공짜에다 품위 유지하라며 용돈까지 받는 경찰대생들이 누리는 특혜의 핵심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의무경찰대 복무로 전환하면 그만이다. 남들처럼 군대 가서 고생하지 않아도 경위 계급과 급여, 연금 혜택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게 의경제도를 유지하는 핵심적 고리일지도 모른다.

광화문 촛불은 앞으로의 집회·시위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는 걸 일깨워줬다. 예전처럼 차벽을 세우고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애꿎은 의경들만 고생시키는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 물량공세식 집회관리는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 운전이나 개인 심부름이나 시키며 누리는 특권적 호사도 이젠 그만둬야 한다. 경찰대생도 다른 젊은이들처럼 군대에 가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노무현 정권은 2007년부터 매년 20%씩 감축하여 2012년엔 전·의경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전·의경제도 자체의 문제도 심각했고, 청년 인구 감소에 따른 병역자원 부족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같은 이유로 교도소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경비교도대도 폐지되었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촛불을 만난 이명박 정권은 전·의경 폐지를 없던 일로 만들었고, 진작 없어져야 할 제도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경비교도대를 없애고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의경을 없앤다고 걱정할 까닭도 없다. 인력 공백이 있다면, 대폭 증원된 경찰관이 맡으면 그만이다. 별도의 증원 없이 내부의 인력조정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진작 없앴어야 할 시대착오적 제도가 정권안보 차원에서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이런 게 바로 적폐다.

곧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다. 경찰의 오래된 적폐를 청산하고 지키지 않았던 약속부터 제대로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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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06205000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