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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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경향신문, 2018.11.0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1-02 10:30
조회
28
국가가 단순히 안보와 치안만을 담당하는 시대는 진작 끝났다. 이젠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국가의 역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헌법도 국가운영의 틀을 제시한다는 차원보다는 국민의 삶의 원리를 규정한다는 의미로 거듭나고 있다. 독재시절에는 그저 대통령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다거나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겠다는 독재자의 의지만 담긴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70조는 다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국가는 헌법 전문에서 다짐하는 것처럼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기구다. 어쩌면 유일한 대안이며 안전장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가 국가의 역할과 닿아 있다. 아파트 값이 폭등하면 곧바로 국가, 구체적으로는 국가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집권세력에게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일상이 힘들어지면 관련 장관의 무능을 성토하는 것도 당연하다. 개인의 안전, 나아가 행복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하며, 국민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최고의 규범이 정하는 대로, 또는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국가는 없었다. 마치 국가기능이 마비된 것처럼 죽음의 행렬을 방치했다. 그래서 시민들은 세월호를 절대 잊을 수 없다며 4년 반이 지나도록 ‘세월호 배지’를 달고 다니며, 이게 국가냐고 묻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싱가포르에서 불쑥 꺼낸 이야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요동쳤다. 박 시장이 “여의도와 용산을 통으로 개발하겠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서울 부동산 값이 폭등했다. 서울이 온통 부동산 전쟁터로 변하자, 시민들은 이게 국가냐고 물었다. 정부는 도대체 뭘 하냐는 거다. 여당 소속의 서울시장이 국토교통부 등 정부부처와 논의조차 없이 불쑥 꺼내든 카드로 부동산 값 폭등을 부채질하는 게 도대체 말이 되냐는 비판이었다. 박 시장은 부동산 폭등은 예측하지 못했다며 통개발 프로젝트를 7주 만에 철회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서울시장이었던 사람이 내놓은 변명치고는 옹색했다.

세월호든 부동산이나 미세먼지든 쟁점의 핵심은 국가의 역할에 있다. 국가가 역할만 제대로 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고통들이 너무 많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늘 답답한 형국이었지만, 최근 사이판 태풍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응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힐 만큼 좋았다. 사이판에 들이닥친 태풍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여행객들은 발이 묶였다. 사이판을 찾은 사람들은 휴양지에서 끔찍한 공포에 직면해야 했다. 이들을 위해 국가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정부의 대응은 신속하고도 정확했다. 태풍으로 공항에서의 정상적인 이착륙이 불가능해지자, 군용기를 보내 신속한 이송작전을 벌였다. 군용기로 여러 차례 사람들을 옮기는 과정도 좋았다. 노약자들부터 우선적으로 이송했는데, 국가다운 품격 있는 조치였다. 신속하고 정확하되, 품격까지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처럼 국가다운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박수가 아깝지 않은 대목이다. 그런데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정부가 중요한 대목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판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비단 대한민국 국민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대응은 우리 국민만을 위험지역에서 안전지역으로 옮기는 것에서 멈췄다. 국민들은 세금을 내는 주권자들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도 그게 당연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신속·정확은커녕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 정부는 지금의 한국 정부처럼 신속하게 군용기까지 파견해서 자국민들을 실어 나르곤 할 일 다했다며 사이판을 떠났다면, 그 섬에 남겨진 한국 국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물론 국가의 기본적인 구실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원망했겠지만, 자기 나라 국민만 챙긴 그 나라 정부에 대한 원망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이런 게 바로 인지상정이다.

자기 국민을 먼저 챙기는 건 그 나라 정부의 당연한 책무겠지만, 여력이 닿는다면 국적을 불문하고 도와줘야 한다. 인도주의의 정신이 바로 그렇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겠다는 헌법적 다짐을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의 품격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아쉽지만, 우리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국가의 역할은 오로지 자기 국민을 구하는 데서만 멈췄다.

국가는 다른 국가와의 경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한다. 높은 담이나 철책으로 국경을 만드는 까닭도 거기 있다. 한국의 휴전선 철책은 이스라엘의 분리장벽과 더불어 가장 극단적인 경계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몰기 위한 분리장벽과 남침으로 참담한 전쟁을 겪었던 우리의 철책은 물론 질적으로 다르지만, 그 쓸모와 규모는 엇비슷하다.

대한민국이 가끔씩이라도 경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150만명이나 되는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처럼은 못할지언정 구조의 손길이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골고루 내밀면 어떨까. 경계를 단박에 허무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 경계를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거다. 이찬수 교수에 따르면, 이건 경계를 실선(實線)이 아니라 점선(點線)으로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 경계가 헐거워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고, 우리가 왜 세금을 내냐며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경계가 헐거워진 만큼 외부와의 소통도 자유로워지고, 안과 밖을 넘나드는 일도 훨씬 쉬워진다. 꽉 닫힌 경계 속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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