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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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경향신문, 2018.06.1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05 15:51
조회
13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역대급’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심판하자는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한국당 등의 참패로 이어졌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그래도 대구·경북은 지켰다고 자위할지 모르나 대구·경북 지역의 균열도 만만치 않다. 이대로라면, 어디서든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이 민심을 통해 정확히 드러났다.


그동안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의 야당들은 그야말로 딴 세상 사람들 같았다. 역사적인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폄훼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마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민심을 거스르며 자기들만의 성에 갇혀 살았던 셈인데,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지방선거 결과가 알려주고 있다.


한국당 같은 민심의 무풍지대가 한둘이 아니다. 제 밥그릇만은 절대 내놓지 못하겠다며 저항하는 검찰이 그렇고, 요즘엔 법원의 모습이 꼭 그렇다.


발단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라는 자기들만의 숙원사업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어떻게 내통했는지 조금씩 밝혀지면서부터였다. 박근혜 정권에 조금이라도 부담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대법원이 앞장서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는 거다. 재판 결과에 명운을 걸고 있는 숱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처지나, ‘법의 지배’와 같은 철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KTX 여승무원, 전교조 조합원,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주민 등은 정교한 국가시스템에 의해 함부로 내쳐졌다. 피해자는 차고 넘칠 만큼 많다.


문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법원행정처장이 조사단장을 맡은 셀프 조사로도 이 정도이니, 좀 더 객관적인 곳에서 들여다봤다면, 아마 더 흉측한 결과와 직면했을 거다.


이를테면 사건관계자에게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받은 판사에 대한 처리를 보면, 그동안 법원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다. 양승태 시절의 법원행정처는 사건관계자에게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수십차례 받은 현직 부장판사의 비위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해당 판사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개업해 지금도 잘나가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도 이 정도면 ‘역대급’이다.


법원은 삼권분립의 한 축이지만, 선출직인 대통령이 지휘하는 행정부나 구성원 전원이 선출직인 국회와는 차원이 다른 조직이다. 민주적 정당성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법원은 뭔가 다를 거라는 믿음, 법을 전공한 사람들은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때로 판결에 승복할 수 없어도 시민들은 참아왔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보듯, 사람 목숨마저 쉽게 앗아버리는 사법살인을 저질러도, 그 막연한 믿음 때문에 법원을 존중하기도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최종 가해자는 법원이었지만, 그 비난은 온통 박정희와 그의 비밀정보조직에만 쏟아졌다. 법원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이번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엄청난 일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법원의 행태는 완전히 딴 세상 사람들의 것이다. 명백한 범죄가 양승태 대법원에서 자행되었고, 그 증거가 숱하게 쌓여있는데도, 판사들의 대응은 딴판이었다. 명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연일 회의를 반복했다. 수석부장회의, 전국법원장회의, 대법관 간담회, 법관대표회의에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사법발전위원회까지 잇따라 열었다. 해법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형사고발이 필요하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형사고발은 곤란하되, “형사절차를 포함하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단다. 뿐만 아니다. 고위급 판사들은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문제 판사에 대한 탄핵이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양승태 본인과 양승태 시절의 법원행정처장들이 이미 법원을 떠나 탄핵할 수 없는데도 탄핵 운운하고 있다.


이런저런 회의만 열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도대체 어떤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 그 범죄를 단죄하는 일이 여러 번의 서로 다른 회의를 거쳐야 하는 일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동안 판사들은 시민들을 향해 준엄한 심판을 내려왔다. 사람에게 죄를 묻는 일에 과감했던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속한 조직의 범죄에 대해서는 시간을 끌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달래보려는 꼼수만 부리고 있다.


어쩌면 대법원장은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지방선거의 살벌한 결과를 보니, 더 이상 버티다간 더 큰 조직적 위기를 자초할 거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내리든 법원은 이미 틀렸다. 양승태가 틀린 것은 물론이고, 김명수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명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연일 회의를 거듭했던 것은 마치 법원은 남다른 조직인 것처럼 여기는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론을 달래며 돌파구를 찾으려는 꼼수를 모를 사람은 없다.


법원의 사활적 관건은 신뢰다. 판결을 믿지 못하면 결코 승복할 수 없다. 갈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교과서에서나 봤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이 될 것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야 법이 없어도 살 수 있겠지만, 약자, 소수자, 아니 대부분의 시민들은 법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 법원에 대한 불신은 그래서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거다. 공동체가 붕괴되는데, 법원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그러니 지금의 사태가 법원에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각종 인연으로 끈끈하게 엮인 법원이라지만, 그런 소소한 인연 따위에 조직의 명운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심각한 사태를 두고도 연일 회의만 거듭하는 법원이 안쓰럽다.


잘못이 있다면 어떤 잘못이 있는지 빠짐없이 밝혀내면 되고,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 된다.


단순한 잘못이 아닌 범죄라면, 죄에 맞는 죗값을 치르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