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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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한 경찰직무와 수구언론(한겨레, 060420)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59
조회
238


지난주 어청수 경기경찰청장은 “국방부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지역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주민 접근을 막기 위해 경비를 요청할 경우 불가 입장을 통보할 것”이라고 했다. 법적 근거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곧바로 몇 신문의 공격이 이어졌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는 사설로 어 청장에 대해 “무법천지의 치외법권 지역”에서 “반미단체들이 땅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참 눈치 빠른 경찰청장”이 “시위대 봐주기”를 한다며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가 경찰의 책무라며 법조문까지 들먹이며 다그친다.

어 청장의 발언은 “땅 주인 노릇하는 반미단체”의 시각으로 봐도 크게 환영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법적 근거 없는 경찰활동은 불가능하다고 했을 뿐이다. 공무원들은 규범, 예산, 인력을 근거로 움직인다. 어떤 중요한 일도, 어떤 필요한 일도 규범 예산 인력이 없으면 못 한단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다. 이런 평범한 이야기가 왜 ‘시위대 봐주기’가 되는가. 지난 한 달 동안에만 벌써 10명의 인권운동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경찰이 시위대를 어떻게 봐주고 있다는 건가. 두 신문은 그저 모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 청장이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속내를 알 순 없다. 법집행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을 확인한 것인지, 평택 경비상황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써 여의도 면적의 6배나 되는 드넓은 평야에서의 ‘작전’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거나, 지역의 민생치안을 제쳐놓고 평택에만 수천명의 인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들 신문의 주장처럼 예전에 “반미면 어떠냐”는 말을 했던 높은 분에게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경찰의 인력 운용의 원칙을 확인했다는 데 있다. 세계 최강의 미군부대를 지켜주는 것도 우습지만, 기지도 아닌 시설 예정지에 대한 경비지원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분명하다. 미군기지라 해서 무조건 경비를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고,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 즉 경비요소가 있어야 한다. 경비요소가 있다 해도 인력이 부족하면 그만이다.

두 신문이 경찰관 직무집행법에서 인용한 것처럼 경찰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 활동을 한다. 그렇지만 이를 위한 경찰의 활동은 적법절차의 원칙, 합리성, 최소성, 보충성, 비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 역시 법률 곳곳에 적시되어 있다.

일부 언론이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는 개념을 자의적으로 확장해서 평택에서의 경찰활동을 다그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대규모 동원이 있는 날이면 각 경찰서는 물론이고 지구대 업무까지 지장을 받는다. 야근을 한 직원들이 퇴근도 못하고 현장에 불려 나와야 한다. 경비분야만 아니라, 수사, 정보, 생활안전, 교통 할 것 없이 총동원 체제로 경찰력이 운용된다. 당연히 치안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민이 원하는 치안활동은 다양하다. 많은 시민들은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지켜주고 어르신이나 여성들이 범죄에 대한 공포 없이 밤거리를 다닐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일을 모두 제쳐 두고 주민동의도 없이 군사작전식으로 진행되는 미군기지 확장사업에 연일 수천명씩 동원되는 것은 경찰비용을 대는 납세자로서, 경찰에 권한을 위임해준 주권자로서, 서비스를 받아야 할 수혜자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경찰이 제 길을 가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일단 언론부터 섬뜩한 선무방송을 그만둬라.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