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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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와 철조망을 치워라 (한겨레 07.03.2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46
조회
256

검문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집회가 열리는 곳이나 사람의 왕래가 많은 역이나 터미널에서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신분증을 보자거나, 짐뒤짐을 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군인이나 경찰관이 아예 나들목에 자리하고 상시적으로 검문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로 검문소다.


다리가 있는 곳, 시도 경계선 같은 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는 군인이나 경찰관이 출입을 통제하고 일상적으로 검문을 하고 있다. 비상계엄이 아닌데도 그렇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무단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상황이라면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지만, 멀쩡한 나라에서 시민의 통행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애초 검문소가 지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들이 선배의 길을 따를지 모르는 후배 군인들의 준동을 막기 위한 용도로 만들었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흔히는 간첩의 침투나 강력범죄자 검거를 위한 것이라고들 하지만, 검문소를 통과하다 순순히 잡혀줄 간첩과 강력범죄자는 없다. 큰 범죄가 생기면 임시검문소까지 차려서 호들갑을 떨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검문소를 거쳐 갈 까닭이 없다.


검문소가 기껏해서 수행하는 기능이라곤 기소중지자 검거뿐이다. 흔히 수배자로 알려진 기소중지자라 해도 무슨 큰 죄인은 아니다. 고소고발 사건에 출석하지 않은 사람, 벌금을 내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죄를 졌다는 의식도 없고, 자신이 기소중지자가 된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니 검문소를 오가다 잡히게 되는 거다. 물론 경찰의 원활한 수사나 형의 집행을 위해 그런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런 행정적 편의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검문소를 운영할 까닭이 될 수는 없다.


해안선마다 길게 늘어선 철조망도 마찬가지다. 동해안 해수욕장마다 흉물스럽게 둘러친 철조망이 수행하는 기능은 또 뭔가. 군 당국은 간첩의 침투를 막는 안보의 지렛대 구실을 한다지만, 철조망에 막혀 침투를 포기한 간첩이 유사 이래 단 한명이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간첩은커녕 생업만 가로막는다며 동해안 주민의 원성이 쏟아지자, 군 당국은 지난해부터 일부 지역의 철조망을 철거하고 그 대신 바다를 잘 볼 수 있는 ‘경관 펜스’를 설치하기도 했다. 철조망보다 덜 흉물스럽기는 하지만, 어린아이마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무용지물이라도 세워놓아야 하는 군인들의 깊은 뜻이 너무 궁금하다.


엊그제 돌아본 경찰의 보안분실도 마찬가지였다. 보안분실을 둘러 본 느낌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한 것과 같았다. 할 일도 없는데 전국에 40개나 되는 분실을 지금껏 유지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보안분실의 가장 큰 고객이었던 한총련마저 반국가성이나 이적성은 고사하고, 조직력 약화로 예전 같지 않은 시대가 아닌가. 경찰청의 재산보호 차원이라면 또 모를까, 비밀스런 장소에 따로 분실을 차려둔 이유를 모르겠다.


시절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북-미 관계 정상화 등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정형근 국회의원이 북한을 방문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한나라당도 변하려나 보다. 어쨌든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을 위한 것이라면 이런저런 움직임이 다 반갑다.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 전쟁만을 생각하게 하는 흉물스런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검문소나 철조망을 무너진 베를린 장벽처럼 지난 시대 한반도 현실의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주는 관광자원으로 쓸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철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