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생각하는 조직이라야 산다(전교조 주간신문<교육희망>, 08.03.2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7:39
조회
227

[희망칼럼]생각하는 조직이라야 산다


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얼마 전 한 사립학교 문제로 회의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학교의 전횡에 문제제기를 하는 조합원이 부당전보를 당해 전교조의 중요한 현안이었나 보다. 참석자의 태반이 전교조 간부들이었다. 해당 학교 분회장은 물론이고, 00지역 사립위원장, 또 무슨 위원장 등이 잔뜩 와 있었다.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무슨 위원장이 저리 많나 싶었다.


사태가 심각하니 많은 간부들이 관심을 갖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좋을 일이지만 다수의 힘으로 위력을 과시하는 집회도 아닌데, 여러 명이 한꺼번에 참석하는 것이 낯설었다. 무슨 무슨 위원회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전교조의 조합원들인데, 한 명이 대표로 참석해서 결과를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무슨 무슨 위원장들은 회의 내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이란 것이 결국 사람 사업을 하는 곳인 만큼, 정부나 회사와 달리 많은 보직과 직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전 조합원의 간부화가 목표라면 모르지만, 간부가 너무 많다. 본부를 필두로, 각 지부 - 지회 - 분회로 이어지는 조직마다 지부장, 지회장, 분회장이 있고,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이 따로 있다. 크고 작은 단위의 책임자들도 모두들 ‘장(長)’자를 붙여야 하는지도 궁금했다.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민족이라야 산다”는 가르침을 주셨지만, 사실 우리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산다. 밥을 먹을 때나 거리를 오갈 때 같은 일상생활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운동(運動)까지도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 생각없이 운동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문도 있겠지만, 관성만 붙으면 생각없는 운동, 껍질만의 운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몇 년 전인가 000 전교조 위원장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강의 준비를 제대로 못했던 것은 바쁜 일정때문이려니 생각하며 이해했지만, 그의 관성적인 말투는 귀에 매우 거슬렸다. 그는 1분에 한두번꼴로 ‘지점’이란 단어를 끄집어냈다. 그것 말고도 일본어 번역투에 온갖 개념어를 섞어 쓰는 전형적인 운동권(?) 말투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기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문장 연결이 매끄럽게 되지 않아서 ‘어, 그, 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볼 수 있는 말버릇이지만, 아무 말에나 지점 어쩌구 하는 말투는 그저 관성의 결과일 뿐이다.


전교조는 누가 뭐래도 필요하고 중요한 조직이다. 수구세력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호시탐탐 타격을 벼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특히 조직운영이나 실천사업과 관련해서는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함석헌 선생의 가르침 대로 생각하는 조직은 살지만, 생각없는 조직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죽은 조직이다.


전교조가 사느냐 죽느냐는 바로 얼마나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신의 조직들만이 아니라 국민과 학생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각종 사안에 대한 대응에서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을 거듭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