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시민사회운동의 활로 (시민사회신문 08.03.1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7:17
조회
207

시민사회운동의 활로
[시론]


오창익


이제 겨우 한달 남짓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 짧은 기간에 정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남은 59개월을 생각하면 머리가 띵하다.


당장 대규모 ‘삽질 사태’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닥친 숙제도 적지 않다. 삽질 문제는 한나라당이 총선공약에서는 뺐지만, 그건 당장의 눈속임에 불구하고 아무리 반대가 있어도 밀어붙일 태세다. 경찰청, 법무부 등은 연일 집회 시위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인 집회 시위의 자유를 그저 ‘떼쓰기’로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천박한 인식에 화답하는 코드 맞추기 행태이다. 경찰관이 시위참가자를 검거하며 범죄를 저질러도 면책특권을 주겠다는 희한한 대책까지 연일 쏟아져 나온다. 한국 사회의 오늘은 시장만능주의, 승자 독식, 양극화라는 단어 몇 개로도 간단히 정리될 수 있을 정도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 이명박 세력이 장악하게 되면, 그나마 이룬 민주주의와 인권에서의 작은 성과마저도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커지고 있다. 상황이 나쁠수록 운동의 역할은 더 소중해진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운동을 활성화시켜야 할 운동단체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다. 시민사회운동의 침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회원이 늘기는커녕 눈에 띄게 줄어드는 단체도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단체도 적지 않다. 예전 같은 영향력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사회적 주목을 받는 것도, 일의 성과를 내는 것도 어렵다는 걱정도 많다.


이런 걱정이 여태 호시절을 누려온 주류 시민단체들만의 것인지, 아니면 다수 단체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운동이 위축되는 답답한 상황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훨씬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나, 잘 쓴 성명서나 더 세련된 보도자료 같은 것은 결코 그 답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답은 새 것이 아니라, 옛 것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운동하는 사람들은 왜 운동을 시작했을까? 물론 운동을 해야 할 시대적 상황 때문이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어떤 책을 보았다든가, 누구에게 강의를 들었다든가, 아니면 선배를 잘못 만난 탓이었을 게다. 그게 운동을 시작하는 기본이었다.


지금 운동이 침체에 빠진 것은 이 기본을 잊었기 때문이다. 아예 아무런 교육프로그램도 갖고 있지 않은 단체는 너무도 많다. 회원들은 물론이고 운영을 책임지는 상근자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함께 모여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일부 운동가들이 비싼 등록금 줘 가며 대학원 진학을 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운동단체에 회의실은 있지만 교육장은 없다. 회의 시간의 반만 쪼개서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운동가들은 일이 많아서 공부할 시간이 없단다. 과연 그럴까. 술 먹는 시간의 반만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운동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부해졌을 것이다. 몸 버리고 돈 써가며 술을 먹는 일은 일상이지만 그보다 백배쯤 더 유익한 공부에는 좀체 시간을 내지 않는 것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현실이다.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서는 대안 마련은커녕 기초적인 비판마저도 힘겨워진다. 직업운동가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 특히 대학생 등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단체마다 각종 교육 강좌를 만들고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한다. 상근자 빼고 겨우 두세 명밖에 모이지 않더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 그 두세 명과도 함께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예전에 비하면 그만큼 발전한 것이라 생각하고, 교육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교육사업을 하면 회원도 늘고, 안정적인 재정운용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순히 한달에 얼마씩 내는 회원이 아니라, 같은 시선으로 함께 고민하는 사람을 늘려가는 것이 바로 운동의 핵심이다. 학습과 조직은 포기해선 안 될 운동의 핵심이다.


공부 않는 운동은 가짜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거나 매몰되지 말자. 긴 호흡으로 좀 더 멀리 내다보자. 아는 얼굴들끼리 보며 뻔한 이야기나 주고받는 형식적인 회의에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말자,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그저 공허한 주먹질만 허공에 해대는 관성적인 집회에 동원되지도 말자. 그런 면에서 우리는 보다 진지해지고 치열해져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는 운동은 가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