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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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창립 정신 빼고 다 바꾸자 (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 08.09.2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24
조회
199

황당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는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라 쓰인 펼침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선거막판, 오죽 급하면 저렇게 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 망측한 구호가 먹혔다. 하긴 돈 들여서 먹히지도 않는 구호를 내걸 후보는 없다. 전교조 간부 출신 후보는 이명박과 전교조를 함께 걸고 넘어졌다. 전형적인 네거티브 선거이고 또 모략이지만, 문제는 이게 먹힌다는 거다. 
 
전교조 때리기 시리즈는 쭉 이어진다. 서울시교육청은 단체협약을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교과부는 학교별 교원단체 가입자 수를 공개한단다. 조직의 명운을 걸다시피했던 '교원평가'도 기정사실이 되어 간다. 조중동은 '전교조 선생이 아이를 맡으면 대학에 못간다'는 황당한 괴담까지 유포시키고 있다. 문제는 저쪽에서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 진행하는 전교조 때리기가 먹혀들어간다는 거다. 
 
앉아서 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만 하다. 이명박 탓, 공정택 탓, 조중동 탓,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괴담에 상식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일반 시민들 탓이다. 맞다. 이들 때문에 전교조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고, 소모적인 논쟁에 휘둘리고 있다. 허나, 다 모략이고 그 탓에 오해와 편견이 생겼다는 상황 판단만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 탓만 하는 것도 너무 속 편한 일이다. 전교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전교조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거다. 
 
전교조든 뭐든 조직은 시민들의 지지가 없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적당히 조직 유지야 할 수 있겠지만, 마음에 품은 뜻을 펼칠 수는 없다. 교육개혁을 추동해나가는 것은 어림도 없고, 시장만능교육정책의 하위 파트너로 성명이나 내거나 하늘을 향해 주먹질이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인이 박힐 정도로 계속되는 전교조 때리기의 결과, 전교조란 이름 석자에 붙인 오해와 편견을 쉽게 떨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상황은 나쁘기만 한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아예 전교조의 창립 정신만 빼고 모든 것을 싹 바꾸면 어떨까.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지만 이름도 바꾸고, 사무실도 옮기고, 시민사회와 함께 진로도 고민하고, 교원평가에 대한 입장도 바꾸고… 이러면 지는 걸까? 작은 싸움에만 몰두하게 하는 정파 구도 해소를 선언하고, 각종 이너써클도 해체하자. 허울뿐인 참교육연구소에 전문연구자도 배치하고 예산도 지원하면서 정책역량도 강화하자. 
 
진리를 쫓아 사는 종교인들이야 남들이 따라오든 말든 삼보일배에다 오체투지, 그리고 100일이 넘는 단식도 할 수 있지만, 대중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나 교육운동은 결코 그럴 수 없다. 겨우 반보씩 앞서가면서 뒤 따라오는 사람들을 늘 살펴야 한다. 남 탓하거나 때리기에 아파하고만 있을 짬이 없다. 본격적인 혁신작업을 시작하자. 전교조의 혁신이 결국 교육을 살리고 아이들을 살리게 될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 암담한 교육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정신과 능력을 가진 곳은 전교조 밖에 없다. 자,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