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떡검 장관’의 중증 ‘5공 향수병’ (한겨레 803호 10.03.2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50
조회
316
청송교도소 찾아 보호감호제 부활 밝힌 이귀남 법무부 장관…
‘여중생 살해’ 책임 있는 국가가 되레 큰소리치는 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청송교도소에 떴다. 매우 이례적인 방문이다. 장관의 말은 거침없었다. 청송교도소가 흉악범을 격리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며, 사형집행장 설치와 보호감호제 부활 등 많은 말을 쏟아냈다. 한결같이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말이다. 부산 여중생 피살 사건 대책과 무관한, 실효성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잔뜩 쏟아냈다.



재범 우려 명목만으로 7년까지 수감

보호감호제만 해도 그렇다. 2005년에 폐지된 사회보호법은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사회 복귀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했다. 이미 형을 마친 사람을 석방하지 않고, 오로지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7년까지 더 감옥에 가둘 수 있었던 거다. 재범의 우려라지만, 그건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미래의 영역이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1981년부터 2005년까지 국가는 미래의 범죄를 예측해 죗값과 별개로 감옥에 가둬버리는 인권침해를 합법적으로 감행했다. 범죄자를 격리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죄지은 만큼이어야 한다. 사회보호법은 전두환 일당이 국민을 테러한 ‘삼청교육대’ 운용의 법률적 근거였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흉악범을 가둔다고 했지만, 실상은 80% 이상이 절도범이었다.

보호감호제가 범죄자의 사회 복귀를 촉진한다지만, 실무는 전혀 딴판이었다. 청송에 보호감호소를 지은 것부터 잘못이다. 지금은 그나마 교통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오지 중의 오지다. 깎아지른 절벽을 뒤로하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데, 교도관들마저 근무를 꺼려 신입 시절에 강제로 몇 년씩 근무를 시켜야 직원 수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면회도 쉽지 않고, 워낙 오지다 보니 교육도 쉽지 않다. 사회와 가장 동떨어진 곳에 보호감호소를 지어놓고는, 사회 복귀를 촉진한다고 말만 했다.

그러니 사회보호법 폐지는 순리였고, 상식의 복원이었다.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등 보수적인 법률가 출신들이 사회보호법의 폐지에 앞장선 것이나, 여야 합의로 법을 폐지한 것도 같은 까닭이다. 다만, 법을 폐지하면서 놔둔 경과규정 때문에 아직도 100명쯤 되는 피감호자들이 2005년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반인권적 감호를 당하고 있는 것만이 풀리지 않은 숙제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이 시계를 완전히 거꾸로 돌리고 있다. 군사정권의 흔적이 가장 적나라하게 남아 있는 청송교도소가 무대였다. 청송까지 기자들을 잔뜩 불러모아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까지 등장시키며 법무부도 부산 여중생 피살 사건과 관련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하긴 청송만큼 과거를 회상하기에 좋은 곳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한 나라의 법집행을 책임지는 법무부 장관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범죄로 희생된 한 여중생의 죽음에 기대 과거 회귀, 인권 역행에 앞장서겠다는 것은 정말이지 화나는 일이다.

‘여중생 죽음’ 기대어 과거 회귀 시도?

여중생을 살해한 김길태라는 ‘괴물’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김씨가 피해자가 다니던 학교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시도했을 때나 20대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고 신고했을 때 경찰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성폭행도 살인도 막을 수 있었다. 여중생의 죽음은 그래서 국가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법무부 장관은 흔한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그저 과거 군부독재 정권 시절로 돌아가자고 한다. 고약한 시절의 고약한 장관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