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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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이건 국가범죄다(한겨레 09012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32
조회
221

강제진압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주재한 회의가 끝난 지 5시간 만에 시작됐다. 농성 시작 24시간 만이다. 상황을 풀기 위해 대화와 타협을 유도한다거나 자진 해산 기회를 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경찰은 수십 차례에 걸쳐 해산을 설득했다지만, 설득이란 말은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다. 경찰은 자극적인 선무방송을 일방적으로 했을 뿐이다.


계급정년을 넘겨 퇴직이 예정된 김석기씨. 하지만 대통령과 같은 고향 덕에 경찰청장 내정자까지 되었다. 임기 절반 남은 현 경찰청장을 제끼고 얻은 자리다. 그래선가. 그는 너무 조급했다. 꿈같은 인생을 선물해 준 정권에 무언가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충성심의 발로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건 김석기씨의 지시가 대참사로 이어졌다는 거다.


그제 새벽 경찰은 1800명을 투입해 겨우 30여명뿐인 농성장을 덮쳤다. 쇠파이프를 든 특공대가 앞장섰다.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크레인에 매단 컨테이너 박스로 가건물을 부숴버리는 가공할 폭력도 휘둘렀다. 경찰의 주장처럼 그곳에는 시너 등 위험물질이 있었다. 아예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이었다. 위험물질 제거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기본적인 조처도 없었다. 추락에 대비하는 매트리스도 없었고 소방차, 구급차도 없었다. 투입된 경찰관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엉터리였다.


경찰은 화염병을 던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거짓말이다. 건물 현장 주변은 이미 철거되었거나 빈 건물이어서 주변 행인 통제만 하면 그만이다. 철거민들이 혹시 도로 쪽에 뭔가를 던져도 그물망만 잘 설치해놓으면 도로교통의 원활한 흐름도 시민의 안전도 어려운 숙제는 아니었다. 법을 어겼다면 법정에 세워 처벌을 받게 하면 된다. 철거민들의 호소는 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줄 만만한 대상으로 여겨졌고, 압도적 우위의 폭력을 통해 다시는 저항하지 못하도록 눌러 놓으려는 정치적 계산뿐이었다.


국가가 시행하지 않는 재개발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인간의 분쟁이다. 갈등과 분쟁은 늘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 때나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중립적 조정자 역할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약자를 편들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국가의 역할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인간의 분쟁에 대해 국가가 이번처럼 선제공격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민 일반에 대한 전쟁선포와도 같다. 이명박 정부는 번듯한 자기 건물 한 채 없는 중산층과 서민들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속내를 이번에도 감추지 않았다.


참사 이후에도 경찰은 유족의 가슴에 피멍 들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시신을 빼돌렸고, 동의는커녕 통보도 없이 시신에 칼을 대 부검을 했다. 시신이라도 보겠다는 유족의 한 맺힌 호소는 새벽까지 외면당했다.


경찰활동은 물리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최후수단으로 다른 선택이 없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용산참사에서 대한민국 경찰은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과감한 선제공격의 수단이 되었다. 동네 호프집 사장님, 중국집 아저씨 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경찰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하소연 좀 해보자고 한 것이 목숨을 빼앗기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존재이유인 경찰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70대 노인을 비롯해 6명이 목숨을 빼앗겼다. 국정운영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끔찍한 국면이다. 국민이 직접 정권의 불의와 폭압에 저항하는 길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