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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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국회 최루탄 투척, 어떻게 봐야 하나? (한겨레 11.2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1:26
조회
324

‘눈물’을 위한 퍼포먼스였을 뿐이다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 
다수당의 폭거는 놔두고 
소수당 의원의 퍼포먼스만 
쟁점 삼는 건 뻔한 꼼수다 


“너희도 한번 울어봐라.” 그게 전부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서민들 눈에는 피눈물이 흐를 테니 최루가루 때문이라도 울어보라는 의미였단다. 시민들 고통에 마음 아파 울 까닭이 없으니 억지로라도 울게 하고 싶었단다. ‘날치기 저지’도 아니고, 최루가루를 뿌린 까닭치고는 단순했다. 울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굳이 울게 만들 까닭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딱 한 번 눈물 흘려봤자, 언제나처럼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갈 게 뻔하다. 그래서 좀 아쉽다. 


그러니 테러라는 비난은 터무니없다. 전형적인 흑색선전이다. 테러 운운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에 대한 비난과 저항을 모면하려는 뻔한 꼼수다.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반쯤의 최루가루는 단상의 국회부의장에게 뿌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뒤집어썼다. 그러면 자해 테러? 테러의 핵심은 공포지만, 최루가루는 눈물에서 멈췄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게 테러인지 아닌지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최루가루를 뿌린 직후, 의사당에 앉아 있던 160명쯤 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몸을 피하는 사람도 없었다. 코앞에서 테러가 발생했는데 앉아서 구경만 하다니! 김 의원을 비난하는 고함이 몇 번 터져 나왔을 뿐이다. 본회의장에 들어와 있던 국회 경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가만있다가, 김 의원이 최루가루로 범벅이 된 저고리를 단상에 털어대자, 그제야 몇 명이 나서 김 의원을 제지한 게 전부였다. 테러는 무슨. 


꼭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 때 김두한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똥물’을 퍼부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좀 더 많은 최루탄을 준비해 의사당 곳곳에 뿌려 날치기를 막는 건 어땠을까.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에 불과하다. 당시 상황은 예상보다 좀 더 엄혹했다. 경찰은 기자·보좌진은 물론 국회의원의 출입마저 막았다. 허를 찔린 야당은 우왕좌왕했다. 총체적으로 무기력했다. 긴박하나 무기력한 상황. 겨우 30명 남짓한 야당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삿대질과 고함이 전부였다. 최루가루는 그 와중에 벌어진 ‘눈물’을 위한 퍼포먼스였다. 그래서 최루가루 논란은 본질에서 한참을 비껴나 있다. 만약 날치기를 막을 만큼 강력한 무언가가 터졌다면 다르겠지만, 냄새와 눈물이 전부였던 단 한통의 최루가루로는 어차피 역부족이었다. 


핵심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다. 홍준표, 황우여, 정의화 등 한나라당 의원들의 날치기 처리가 핵심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얻고 싶은 걸 얻었겠지만, 99%의 시민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가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 그저 경제영토가 넓어진다는 식의 일방적인 선전뿐이었다. 많은 토론이 있었다지만, 찬반 입장은 팽팽했다. 접점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익을 본다는 장밋빛 전망도 있었지만, 피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구체적이었다. 경제학자 장하준의 ‘이혼조차 할 수 없는 결혼’이란 말처럼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 경제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이 심대한 영향을 거의 항구적으로 받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역할은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검토하고 정부에 보완을 요구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게 3권 분립의 원칙이다. 


절대다수당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명분을 쌓기 위한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4년 반을 끌었다지만, 시간을 지체시킨 것은 한국의 소수정당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자기 이익을 더 챙기기 위한 미국의 재협상 요구 때문에 지체되었다. 미국 의회가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것은 지난달 12일의 일이었다. 미국이 기다렸다면 그 시간은 고작 달포 남짓이었다. ‘끝장토론’이니 뭐니 말만 요란했지, 국회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대통령이 국회에 다녀갔고, 딱 일주일 뒤 날치기가 감행되었다. 요식절차는 끝났고 결국은 힘을 앞세운 다수당의 횡포만 남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 날치기로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 다수당의 폭거는 놔두고 소수당 의원의 퍼포먼스만 쟁점이 되고 있다. 정작 핵심은 가루처럼 흩어져 버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