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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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안 해 살인 늘었다고?(한겨레21 제748호 09022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34
조회
345

- 사형 집행했던 시기에 살인사건 증가율 되레 높아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한나라당이 사형집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말은 “사형집행이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이 높다”였지만, 집권여당이 법무부 차관을 국회로 불러 하는 말이니 무게가 만만치 않다.


 정말 기어이 죽이려나 보다. 몇 년 전 연쇄살인범 유아무개씨 사건 때도 사형집행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공식적인 무게가 실리지는 않았었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시켜주려나 보다.



세계적 흐름 거슬러 뭘 얻겠다는 건지


 사형집행을 안 하니 흉악범죄가 늘었단다. 집행 없는 지난 10년 동안 살인사건만 32%가 늘었단다. 같은 기간에 절도는 100%이상 늘었다는 건 그렇다 치고, 집행이 없으니 살인사건이 늘었다는 통계가 맞는지만 확인해보자. 사형집행이 없었던 1998년부터 2005년까지의 살인사건 증가율은 10.2%다. 963건에서 1,061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사형집행을 했던 1990년부터 1997년까지의 살인사건 증가율은 23.9%다. 633건에서 784건으로 늘었다. 그동안 살인사건은 꾸준히 늘었지만, 사형집행 시기의 살인사건 증가율은 집행하지 않을 때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통계는 사형을 집행할 때 오히려 살인사건이 더 빠르게 늘어나거나, 최소한 사형집행과 살인사건 발생은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형집행을 해도 살인사건이 줄지 않았다면 달리 기대할만한 효과는 뭐가 있을까.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국가기강을 세울 수 있단다. 공포를 통해 기강을 세운다는 발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사형제 폐지라는 전세계적 흐름을 거스르고 뭘 얻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유럽 등 인권선진국의 거센 비난과 국가신인도 하락은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은 것은 딱 하나. 한나라당이 밝힌 ‘국민여론’이다. 이건 확실해 보인다. 다수가 사형집행을 원한다. 국민 일반이 지닌 권선징악의 정의관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 말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수사나 재판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니 더 흉악한 범죄자가 ‘비싼’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사형을 면하고 덜 나쁜 범죄자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일도 적지 않다. 여의도에서 자동차를 몰다 어린이를 죽게 한 범죄자는 이미 사형집행으로 목숨을 빼앗겼지만, 예쁜 이름을 가진 어린이를 납치해 죽여 놓고도 부모에게 돈을 뜯어내려 했던 범죄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양형기준도 재판부마다 들쑥날쑥하다는 주장도 많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권한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런 권한이 있다고 쳐도, 사법제도를 통한 국가의 판단이 무결점의 완벽성을 지녀야만 사형제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무결점은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피해자 돕는 방안 고민할 때


 흉악범을 응징했다는 것 말고는 사형집행으로 피해자나 유족이 얻는 것도 없다. 많은 나라들은 범죄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 얻어지는 수익으로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범죄 피해에 대한 국가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생각해볼만한 대안이다.


 애써 조금씩 진전시켰던 인권이 전면적으로 후퇴하는 건 그렇다 쳐도, 사형집행으로 얻는 건 흉악범을 혼내주었다는 ‘느낌’이나 ‘기분’말고는 없다. 흉악범의 입장에선 그냥 죽어버리는 것보다 평생 또는 아주 오랫동안 감옥에 갇히는 게 더 무서운 형벌일 수도 있다. 죽음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감금의 고통은 석방될 때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