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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찰’ 없애야, 경찰도 정권도 산다 (경향신문, 2019.06.1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6-14 09:49
조회
121


정보경찰은 희한하다. 경찰의 임무를 다룬 ‘경찰법’ 제3조에는 ‘치안정보의 수집·작성·배포’라는 규정이 있다. 정보경찰의 임무다.


문제는 뭐가 치안정보냐는 거다. 보통은 범죄정보를 떠올리겠지만 경찰이 말하는 치안정보의 개념에 범죄정보는 없다. 범죄정보는 경찰청 정보국이 아니라 경찰청 수사국 범죄정보과 같은 곳에서 다룬다. 사이버 범죄정보라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서, 국제범죄정보라면 외사국에서 다룬다. 범죄정보를 뺀 치안정보라는 게 무엇일까.


사전적으로야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일 텐데, 그 안녕과 질서가 주권자인 시민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다스리는 쪽’, 곧 집권세력 입장에서의 안녕과 질서인 경우가 많다.


정보경찰의 활동은 온통 대통령을 위한 보고서 작성에 맞춰져 있다. 검찰수사로 정보경찰의 민낯이 드러났듯이, 대통령의 사주팔자가 좋아 국운이 상승한다는 식의 유치한 정보보고도 넘쳐난다. 청와대의 요구에 따라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기도 한다. 대통령 친위세력의 당선을 위해 동향을 파악하고 사전투표소를 염탐하면서 선거판세를 읽기도 한다. 3000명 남짓한 정보경찰은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해 치안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고 있다.


경찰 입장에서는 대통령을 위해 일하며 권력의 핵심과 연결망을 만들 수 있어 좋을 게다. 청와대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 답을 찾아주니 좋을 거다.


문제는 대통령과 경찰에게 좋다고 시민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거다. 납세자인 시민이 비용 전부를 부담해야 하는 조직이 주권자인 시민이 빌려준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그저 반민주적인 작태일 뿐이다.


경찰청은 정보경찰의 역할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집회·시위 관리나 신원조사 등을 정보경찰이 맡고 있지만 집회·시위와 관련한 신고 업무라면 경찰서 정보과가 아니라 민원부서가 맡는 게 맞다. 집회와 시위를 하려는 사람들을 위축시킬 의도가 아니라면 분위기조차 비밀스러운 정보과에서 맡을 까닭이 없다. 집회현장에서 정보경찰이 대화를 촉진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겠지만, 그런 일은 원래부터 관련 부처의 몫이다. 괜히 몸값을 올리고 자기 역할을 과장하기 위해 집회현장을 오갈 이유는 없다. 만약 불법행위가 있다면, 수사나 형사 부서가 맡으면 된다. 전형적인 민원부서 일이어야 할 신원조사도 마찬가지다. 뭐라 변명하든 정보경찰의 핵심은 대통령을 위한 정보보고일 뿐이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려면 각계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보경찰에 의해 걸러지고 다듬어진 정보에 의존하면 더더욱 안된다. 궁금하다면 각계 인사를 직접 만나면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전화, 이메일 등 온갖 매개들을 활용하면 된다. 언론보도나 인터넷 등에 귀를 기울여도 좋다. 측근이든 정적이든 상대의 은밀한 움직임까지 알고 싶다는 욕구가 아니라면 굳이 정보경찰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국가정보원이 국내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니 경찰정보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에서 그렇다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인사검증에 꼭 필요하다지만, 인사검증 자료를 인사혁신처나 관련부서가 아닌 정보경찰에 기댈 까닭도 없다. 범죄 관련 정보를 알고 싶다면, 공직 후보자에게 범죄경력조회를 떼어오라고 주문하면 그만이다. 사영기업도 다들 그렇게 한다. 굳이 필요하다면, ‘세평(世評)’ 정도일 텐데, 믿거나 말거나 식의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평판을 듣기 위해 3000명이나 되는 정보경찰을 운영할 필요는 없다. 만약 꼭 필요한 기능이라면 인사혁신처, 굳이 중복 검증이 필요하다면 국무총리실에 관련 기능을 두면 된다.


정보경찰의 보고서는 일선 정보관이 작성한 다음 경찰서 정보과 - 지방경찰청 정보부 - 경찰청 정보국으로 이어지는 지휘 라인을 통해 이중삼중의 점검과 보안을 거친 후 청와대 보고용으로 거듭난다. 일제강점기의 특별고등경찰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았던 노하우가 있으니 정보경찰이 만든 보고서를 읽는 재미도 괜찮을 거다. 그 재미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대통령이 싫어할 만한 보고는 일선 정보관들부터 기피한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양념 치듯 가끔 넣겠지만, 결국은 대통령의 결단만이 나라를 구한다는 식의 보고서가 잇따를 뿐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노동조합도 없고 기본적인 민주시민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는, 오로지 정권에 대한 충성만을 거듭한 사람들에게 기댈 일은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보경찰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 정보경찰의 보고서야말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의 장막일 뿐이다. 청와대 직원들이 정보보고서 읽는 재미에 빠져 아무리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하더라도 넘어가면 안된다. 정보경찰을 악용하지 않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도 답은 아니다.


정보경찰이 망치는 건 대통령만이 아니다. 경찰에도 득이 될 건 없다. 일부 고위직이야 정보경찰을 통해 청와대와의 연결망을 갖게 되어 좋을 거다. 계급정년이 있는 팍팍한 현실에서 승진을 거듭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거다. 몇몇 정치경찰에게 좋은 일이 10여만명의 경찰관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경찰은 법 집행기관이다. 종사자도 많고 대민접촉의 폭도 넓고 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 언제나 공정해야 하며 법 집행기관으로서의 권위도 필요하다. 그러니 제발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뻔하고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쫓아다니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법률 개정도 필요 없다. 대통령만 결심하면 된다. 앞으로는 정보경찰이 만든 보고서를 읽지 않을 테니, 만들지 말라고 지시하면 된다. 할 일이 없어진 정보경찰 부서는 폐지하고 정보관들은 민생치안 현장으로 시민들을 위한 역할로 돌려보내면 된다. 정보경찰을 없앴을 때의 부작용이나 문제는 하나도 없다. 정보경찰을 그대로 둔 채 진행하는 경찰개혁은 공염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