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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동정에 대하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7:08
조회
260

서정민갑/ 도시 서민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동냥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한동안 그런 분들을 만나게 되면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모두 털어서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머니에 있는 잔돈 이래봤자 많아야 2000원, 설마 그 돈이 없다고 못 살겠는가 하는 배짱과 그 정도라도 나누면서 살아야한다는 어떤 부채감 같은 것 때문이었는데 이 다짐도 나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는 잘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주머니에 있는 잔돈이 나의 현금 전부일 때 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참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 돈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돈이 지금 내게 얼마나 소중한 돈인가, 혹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 앞을 지나 멀어져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안타까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겨우 2000원 정도의 동전을 가지고 갈등해야 하는 이런 삶이라니 하는 안타까움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저들 중의 모두가 다 없이 사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합리화 시키는 나의 눈에 좀 더 가까이 그들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앞서 말한 음악을 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색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뭐랄까? 그들의 행색이 너무나 단정하고 깔끔했다. 머리는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위 자국이 남아있고, 옷은 새옷처럼 깨끗했으며, 특히(!) 신발이 유명 브랜드 제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돈을 받아 챙기는 그들의 손은 얼마나 부드럽고 고왔는지. 이렇게 단정한 모습으로 구걸을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과연 이들이 구걸을 하러 다닐만큼 생활이 힘든 것인지 의심스러워졌다. 뭐, 그런 이야기 있지 않은가? 구걸하고 나와서는 자가용을 타고 집에 간다는 이야기 말이다.


구걸 또한 삶의 방식


 그리하여 나는 그런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곤 했다. 나의 돈은 아주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조금씩 떨궈졌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가 실제로 부자이건 가난하건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만인의 동정을 호소하러 나온 것이고 또 그를 위해 일정한 자신의 노동을 진행하고 있다면 그 노동에 대한 댓가로라도 그는 얼마든지 돈을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가끔씩 건장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너무도 당당하고 숙련된 솜씨로 종이를 돌리며 구걸할 때 머릿속으로 “젊은 사람이 일을 하면 입에 풀칠 못할까” 이런 생각을 하곤 하던 나는 문득 그 역시 구걸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하기 싫은 것이다. 아니, 자신의 방식으로 일을 해서 조금만 벌고 쓰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주머니는 결코 그들을 향해 열리지 않았다. 나의 동정은 어딘가 몸 한구석이 불편하거나 지극히 늙었거나 하는 이들, 즉 나보다 무언가 열등했던 사람들에게만 열렸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지하철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음으로 결국 우리는 동냥을 다니는 사람에 대한 적선을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누구를 강요하는가


 동냥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해서는 절대 안되고 당당하게 구걸해서도 안되며 젊은 사람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얼마되지도 않는 돈도 반드시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 불쌍해 보이는 사람만을 선별해서 돕겠다는 것은 어쩌면 이 바쁜 현대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그 불쌍한 사람과 불쌍하지 않은 사람을 누가 선별할 수 있으며 불쌍한 사람만이 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인가? 결국 우리가 적선하는 그 짧은 순간,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기 보다는 그들의 비참을 관람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아닌가? 내보일 것도 생산할 것도 아무것도 없어, 자신의 굽은 팔과 다리 혹은 잘린 손가락 따위를 만인 앞에 내보여야만 연명할 수 있는 이 시대, 나 좀 도와달라는 말로는 결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처절한 몸뚱이를 내보여야만 겨우 마음을 열 정도로 팍팍해져가는 사람들의 시대. 그렇게 인지상정의 측은지심을 누르고 눌러야만 살 수 있는 시대는 과연 사람의 시대인가? 사람의 시대로부터 자꾸만 멀어지는 이 슬픈 지하철을 함께 타고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이 지하철을 몰고 가는 정부는 도대체 지금 지하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것일까? 적선을 통해서는 결코 세상이 달라질 수 없음을 매몰차게 선언한 브레히트의 심정을 이제야 비로소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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