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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권건아, 유혜경 경위 - 마담 쓰리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그녀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7:00
조회
2117


여준민/ 인권연대 회원


인권연대가 인연이 되어


그녀들을 처음 만난 건 올 4월 강원도 영월에서였다. 인권연대에서 주최한 ‘경찰인권교육’프로그램에 선배 언니가 ‘장애인 인권’을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강연자 비서(?)를 핑계 삼아 따라나선 것이다.


나는 이 때 꿩 먹고 알도 먹은 것 같다. 휘감기듯 흐르는 동강의 모습은 잠시나마 ‘봄바람이 치맛바람’ 되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고, 조직적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진지한 모습으로 ‘인권’이라는 주제와 마주하며 놀라고 고민하는 경찰들의 모습에서 어렴풋한 시작을 느끼기도 했으니까. 여하튼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나 보다. 그녀들은 곧바로 인권연대 회원이 되었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인권학교도 수강했단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과는 다른 경험들을 통해 인식을 확장하고 있는 유혜경·권건아 경위를 만났다.


인권침해 요주 조직과 인권단체 사람들의 만남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갑고 유쾌했지만 미묘한 조심스러움도 느껴진다. 아무리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지만 경찰 신분인 그들이 경찰개혁을 외치는 인권연대에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니 다소 심리상태는 불안정했을 것도 같다. 어찌 보면 어색한 만남일 수 있을 게다. 이를 허창영 활동가가 눈치를 챘나 보다. “경찰 현안을 묻는 게 아니라 젊은 신세대 여경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이야기를 꺼내자 웃음으로 넘긴다. “술 앞에 두고 질문과 답을 기계적으로 하지 말자”라는 제안에도 서슴없이 동의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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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유혜경


우선 그녀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부터 해야겠다.
인권보호센터에서 인권교육, 피해자지원단체간의 네트워크를 담당하고 있는 유혜경 경위(29세, 이하 유). 그녀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간부후보생 시험을 통해 경찰이 됐다. “경찰이 되겠다는 것은 중학교 때부터의 꿈이었어요. 제가 졸업할 당시 처음으로 여성 간부후보생을 뽑아 운 좋게 들어온 거죠.”


대학을 갓 졸업한 듯한 외모의 유 경위지만, 일선 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사기, 간통 등의 사건을 담당하기도 했고, 뛰어난 조사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파견 나가 장준하선생 팀에서 활동한 경력도 갖고 있다.


“인권침해 경찰이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문사진상위에서 일하면서 여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그곳에 가기 전에는 민간단체가 항상 대안 없는 비판만 하는 것 같았는데, 민·관이 함께 일하면서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졌죠.” 유 경위는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의 인권보호센터 활동도 인식의 폭이 새롭게 넓히고 있어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대학시설에는 참기만 했던 종교탄압(?)에 대해서 열을 올렸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불교재단이었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이곳저곳 빈 강의실을 찾아 다녔죠. 4년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했어요.”


아니 이게 웬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싶어 다들 열을 내고 있는데, 옆에 있던 권 경위가 “종교가 종교를 배타하는 것은 종교 스스로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세게 나오자 일순간에 정리가 된다. ‘강의석 군이 동국대를 갔어야 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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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권건아


권건아(28세, 이하 권) 경위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경찰이 꿈이었다고 한다. 중학교를 특기생으로 갈 정도로 뛰어난 장거리 육상 선수였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성격 좋고 운동 잘하니 경찰이 되는 게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앞 뒤 잴 것 없이 ‘그러려니’했다. 그러다 중간에 특전사나 사진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는데 그건 경찰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대체했다니 지금은 일과 취미 모두를 얻은 셈이다. 권 경위는 풍물패, 사진, 스킨스쿠버 등의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단다.


성취욕이 강한 듯한 느낌은 검고 긴 생머리에 강한 눈빛에서도 풍겨져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권 경위는 파출소장, 강력반 반장 출신이다. “2년을 했는데 365일 출근을 했죠. 집에 못 들어가니 씻지도 못해 머리에 기름이 하도 껴서 짧게 자르기도 했어요. 집은 경찰서 옆으로 이사하구요. 가정, 개인사를 모두 포기해야 가능한 부서에요.”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인권보호센터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좀 근질거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많이 배우고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여경이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차별받는 한계도 있지만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더 잘 만들어내는 일에도 매력을 느끼는 듯 했다.  


경찰에 남아있는 군대문화


그런데, 하마터면 그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경이 될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아직은 남성중심의 군대문화가 지배적인 경찰조직이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간부급 여경을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업무가 아니라 행정업무에서는 보조의 의미로 여경을 뽑긴 했지만, 핵심 업무에 대해서는 요식행위처럼 몇 사람만을 승진시키는 게 관행이었으니까.


“제가 졸업하던 해 처음으로 여성 간부후보생을 뽑았죠. 그 전에는 경찰대학 출신 아니면 여성이 곧바로 간부로 입문하는 길은 없었어요.”(유)


“경찰대학도 9기부터 16기까지는 5명, 17기부터는 12명을 뽑았어요. 정원의 10%라는 여성할당제가 적용된 건데, 그 전에는 뽑지도 않았죠.”(권)


두 사람은 “여성은 경찰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누가 했느냐“며 2세기에도 편협한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인 경찰조직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거의 육사와 비슷한 시스템이죠. 대학이라 해도 통제된 사회에요. 지금 20기는 좀 풀렸다고 하지만 저는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고 18기부터 없어진 제식훈련도 정말 많이 연습 했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제식훈련이란 줄 맞추면서 손 흔들고 행진하는 것이라는데, 군기를 잡고 정신을 훈련시키기 위함이란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 같은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체력강화를 위한 집단문화를 4년 동안 경험했지만 그것 때문에 동료들과의 동질감을 느낀 건 아닌 것 같아요” (권)


일제시대의 잔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상한 군사문화는 어느새 ‘극기훈련’이란 이름으로 신입사원 프로그램이나 혹은 학생들 방학 프로그램으로 집단성을 강화한다고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도대체 누가 그 때를 기억하며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는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권력에 터무니없는 놀아났던 것이 새삼 ‘억울하다’고 느껴졌다.


그녀들의 ‘화려한 날들


# 1. “일선 시절의 재밌는 이야기 해 달라”는 허창영 활동가의 주문에 두 사람은 신이 난 것 같다. 특히 권 경위는 파출소장 당시 변사사건 신고를 받고 의욕에 넘쳐 덤볐다가(?) 다쳤다는 사례는 한 마디로 ‘좌충우돌 신입 소장 일기’ 같다.


“앞집에서 구더기가 자꾸 나온다는 신고를 받고 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사람이 쓰러져 나오고 눈은 튀어나오고 온 집에 구더기 투성이었어요. 모든 장기가 썩어 냄새도 엄청났지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권 경위는 여자라고 그러는 것 같아 오히려 씩씩하게 보이려고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단다. “근데 뒤늦게 온 경찰서 수사대는 오자마자 향을 피우는 거에요. 아, 다 이유가 있더군요. 이틀이 지나도 제 몸에서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시체냄새가 가시지 않았는데, 향을 피우니 그 사람들 몸에는 향냄새가 벤 거죠.” 20대 초반의 파출소장을 놀려먹을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노하우를 갖춘 직원들은  곁에 오지도 말라고 손사래를 쳤단다. 잠시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일선 경찰일 때가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고 하면서.


 


# 2. 여경이라 성폭력과 아줌마 도박 사건을 주로 맡았다는 둘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우나에서 고생고생하며 도박현장을 덮친 사건, 꽃제비 아줌마의 만병통치약 사기사건, 은행날치기 사건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마구 쏟아낸다. 자신 앞에서 벌어진 날치기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동일범죄라는 걸 밝혀내고, 지방까지 쫓아가 범인을 잡은 사건은 ‘마담 쓰리’의 여형사를 떠올리기에 충분할 정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사람들의 실제 주인공이 내 앞에 앉아 있다는 상황이 재밌기도 했다. “집요하게 추적해 결말을 가져올 때의 희열감이 힘들어도 이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범죄를 소탕한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그녀들을 움직이는 힘인가 보다.  



# 3. 하지만 일진회를 비롯한 청소년 범죄의 실상과 생계형 범죄 이야기가 나올 때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는다. 유 경위는 “일진회 피해자가 수십 명이었는데 피해자를 위한 대책은 거의 없었죠. 내내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고, 생계형 범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거의 자포자기에요. 차라리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게 마음 편하다고 말씀하시죠.” 라고 말하며, “오죽하면 감옥에서 나온 후 곧바로 자신을 찾아와 차비라도 달라는 사람이 있었겠냐”며 빈곤의 늪에 떨어진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인권’과 조우했을 때의 첫마음 그대로


그녀들의 계급은 경위다. 쉽게 말하자면 파출소장 급인데 일반 순경의 15%만이 경위라는 계급을 달 수 있다고 하니 젊은 여경들에게는 높은 지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미 4-5년차의 경력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누구보다 ‘인권 감수성’에 대해 고민하고 또 알려고 하는 것 같다. 인권보호센터의 모습을 셋팅하는 이 시기에, 두 사람이 ‘인권’과 조우하며 가졌던 첫마음이 그대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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