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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박정희 시대는 인권침해의 역사지요” - 인권연대가 만난 사람 1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8 17:30
조회
349


여준민/ 인권연대 회원


 윤영전(64세) 선생.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고 소설이었다. 41년생으로 전라도 광주가 고향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느 한 시기의 특정 지역을 거명하면 사람들의 뇌리에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어떤 풍경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은 우리의 역사였다.


평화의 이름으로


 예전 것이라며 건네준 명함에는 평화통일시민연대 전 공동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평화통일시민연대는 외대 이장희 교수가 대표로 있는 조직이다.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신데, 경실련 통일협회에서 주관했던 민족화해아카데미에서 만난 분들이 의기투합해서 2001년에 만든 단체라고 한다. 아마 당시에 쓰던 것은 아니고, 이러 저리 다니시며 활동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 여긴 듯 해 새로 제작한 것 같았다. 서예가, 수필을 주로 쓰는 문필가로 생활하고 있지만 분단과 통일, 평화가 지금까지 그의 화두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는 이 명함을 귀하게 여기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 출범한 가칭 평화재향군인회의 고문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었다. 65년 병장 제대를 앞두고 장교시험을 보려했지만 좌익 부역자라는 이유로 학과시험을 볼 수 없었고, 오기가 생긴 그는 베트남 참전을 지원한 것이다.(그의 가족사는 잠시 후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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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통일, 평화가 화두라는 윤영전 선생


 “순전히 오기로 신청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때는 신원조회를 무사히 통과했어요. 건설지원단으로 13개월 근무하고 돌아왔죠.” 최근 그가 관심을 갖는 영역은 참전 용사들의 정당한 처우 개선이라고 한다. “베트남전의 의미와 참전했던 사람들의 정당한 대우는 따로 떨어뜨려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막무가내를 쓰면서 외치는 이유가 있지요. 1만5천명이 고엽제 피해로 2, 3세까지 장애를 고스란히 갖게 되었는데도 국가는 정당한 대접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당시 처음 10년간 6천명이 사망하고 그 4배인 2만4천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사망자 중 3천5백명이 불과 참전 8개월만에 전사했다는 거 알아요? 그 부대 책임자들은 다 훈장을 받았죠. 정글 작전에서 전략, 전술도 없이 무리한 작전을 짜서 가난한 사람을 죽이거나 부상당하게 만들고는, 그들은 가슴에 훈장을 단 겁니다. 부하들 죽음을 대신한 훈장을 말이죠.”


 그는 그 훈장이 말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사람 많이 죽였다’고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평생을 힘겹게 살아야 하는 사병에게 돌아온 것은 장애뿐이라고 분노했다. 베트남전이 그에게 남긴 것은 “분단국가의 국민이 분단을 만들려고 간 것”이라는 분명한 현실인식이었다. “미국과 한국이 철수했으면 베트남은 자연스럽게 통일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코 전쟁이란 이름으로 인권과 평화, 통일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달은 것 같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우리는 분단국가로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어요. 미제국주의 전쟁에 뒷바라지해서는 안되죠.”라며 단호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피로 물든 가족사


 그가 이렇게 분단과 통일에 천착한 활동을 하는 이유에는 가슴 아픈 한국현대사와 연관이 있다. 8살이던 49년, 그는 해방의 기쁨은커녕 남북한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큰형을 잃는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다 지하활동을 한 것이 발각되어 반공법 적용을 받게 되고, 처참한 고문을 받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처형당한 것이다. 당시 좌익 활동을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뚜렷한 사상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기 보다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응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 그의 형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7월 말 경 광주로 내려온 인민군은 혁혁한 공을 세운 집안이라며 그의 아버지에게는 인민위원장을, 당숙모에게는 여성위원장을 시켰고 둘째형은 인민의용대에 소속되기도 했다. 외갓집은 거의 좌익 활동을 한 사람들이었고, 외숙은 경찰에게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어린 눈으로 보았지만 기가 막혔죠. 가족이 모두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그의 가족사는 피로 얼룩지게 되었다.


박정희 평가와 평화통일


“그러다가 80년 광주 얘기를 들었죠. 당시 서울대 교직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에게 전화로 내용을 듣고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신분이 신분인지라 표면에 나서기는 어려웠지만 그는 학생들을 측면 지원했고 87년에 천주교 평신도 모임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저는 한국사회의 현대사를 쭉 목도한 사람입니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가 남는 것이고, 통일을 이야기하면서도 평화가 빠져 있는 겁니다.”


그는 남로당 당원이었다가 여순사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고발했고, 그 힘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혼란이 거듭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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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얼룩진 가족사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던 선생


 “성경에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린 자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정희는 정반대의 사람이죠.” 그는 자꾸 죽은 자신의 형과 박정희가 오버랩 된다고 말한다. 누구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누구는 평범한 시민들의 죽음을 발판으로 죽을 때까지 권력을 잡았지만 평가도 제대로 안되는 현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말하지만, 진정성이 깃들어 있는지, 우리가 말하는 ‘통일’안에 ‘평화’가 있는지 되새겨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촌을 죽게 만든 새마을운동에 대해 북한에서 내린 평가도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박근혜 대표가 방북했을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당신 아버지처럼 새마을 운동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의 평가는 온당치도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말하며, “박정희 시대는 수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 낸 분명한 인권침해의 역사”라고 못을 박았다.


 그런 그에게도 고향, ‘광주’를 부정했던 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에세이21> 2005년 가을호에서 ‘고향을 부정했던 그 날’이라는 글을 통해 고백하고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서울대 후문에서 호외를 받아본 사람이 “전라도 광주 놈들, 죽일 놈들”이라고 욕하는 소리를 듣고 참을 수 없어 “확실치도 않은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마시오.”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대뜸 “신문에 나왔는데, 왜 사실이 아니야! 당신 고향이 어디야?”라고 따지더란다. 그래서 “검열 받은 신문을 보고 광주를 욕하지 말아라.”고 했지만, 차마 광주라고 이야기 하지 못하고 “나, 충청도 사람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 사연이 그에게는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던 돌덩이 같은 것이었나 보다.


 그는 요즘 글 쓰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가슴에 맺혀있는 분단의 한이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지도록 하는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고 윤이상 씨 추모제가 열리는 조계사로 가야한다며,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뒷모습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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