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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그대가 나무라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3 11:26
조회
287

서정민갑/ 식물주의자


 그대가 나무라면,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 서있는 나무라면 어떨까? 그리하여, 이 겨울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목과 그대의 몸뚱아리와 그대의 팔다리에 전기줄을 칭칭 동여매야 한다면 어떨까? 그 전기줄에 매달린 수많은 전구들이 매일 밤마다 그대의 몸 위에서 반짝인다면 그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과 작은 환호성에 기뻐해야 할까? 여린 가지 위로 전기가 흐르는 것쯤이야, 눈을 붙이고 잠들어야 하는 시간에 불빛들을 그대로 받아 안아야하는 것쯤이야 기꺼이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 나무들 대신 그대가 광화문 거리에 서 있는 것은 어떨까? 나무들 대신 그대의 몸에 전기줄을 휘감고 밤마다 불을 밝히며 서 있는다면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지는 않을까?


 단지 그대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대의 기쁨을 위해 할퀴고 베이고 죽음을 당하는 것들은 그 얼마나 많은가? 만약 그대가 나무이거나, 닭이거나, 소이거나, 혹은 돼지라면 자신의 삶이 그저 인간에게 먹히고 쓰여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쁘게 동의할 수 있을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만 가능한 세계의 생사여탈권은 과연 누가 부여한 것일까?


05122101.jpg


사진출처 - 서울신문


 지금 지구상에는 약 3,000만종의 생물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10분마다 한 종의 생물이 이 지구별을 영원히 떠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25년 내에 지구 전체 생물종의 25%가 멸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멸종 생물종이 과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자, 그대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어떤 생물종 하나가 절멸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괜찮은가? 아무렇지도 않은가?


 세상의 모든 아픔을 모두 제 것처럼 여기고 살아갈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늘상 스스로 사람 아닌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스스로가 저 광화문에 힘겹게 서 있는 나무이거나, 좁은 닭장안에서 항생제 가득한 사료를 계속 먹으며 밤낮으로 알을 낳아야 하는 닭이거나, 인간의 교통을 위해 허리 잘려야 하는 산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은 많이 달라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광화문의 반짝이는 나무는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닐 것이고, 매운 불닭은 그저 맛있기만 한 술안주가 아닐 것이며,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 역시 절대로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연은 돌고 돈다했다. 우리가 지금 비록 이 생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 아쉬울 것 없이 살아가지만 다음 생에서는 인간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굳이 다음 생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즐거움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아프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광화문 거리 나무위의 불은 그만 끄고, 육식보다는 채식을 즐기며, 개발보다는 느림을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잊지 말자. 지금도 무언가 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이 슬픈 사실은 언젠가 소리 없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우리 인간을 쓰러뜨릴 것이다. 휙휙휙, 멀리서 부메랑이 돌아오는 소리가 한없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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