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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사이시옷'을 읽으시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5 15:43
조회
234

서정민갑/ 만화애호가


  외가쪽으로 몸이 좀 불편한 친척이 있었다. 나보다 한 두 살이 많았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다운증후군이거나 뭐 그런 증상을 보이는 이였는데 어렸을 때 그를 처음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덩치는 산만한 사람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데다 어쩌다 발작 같은 것을 일으키면 외할아버지도 몰라보고, 자기 엄마도 몰라볼 지경으로 날뛰는데 힘은 또 어찌나 세던지. 친척분들은 그와도 친하게 지내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그가 언제 또 그렇게 날뛸지 몰라 무서웠고 그와 친해지는 방법을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우리는 그를 슬금슬금 피했고 나이를 먹어가며 친척들의 모임에서도 그를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마 지금도 살아있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어쩌면 죽은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엔 시골에서 살았던 탓에 별별 사람들을 다 봤던 기억이 난다. 동네에 꼭 한 두 명씩 있었던 정신이상이 된 여자들, 우리는 그들을 미친X이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했지만 우리를 따끔하게 야단쳐준 어른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보니 발달이 늦은 아이들을 따로 모아 수업하는 반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병신이라 부르며 친구들끼리 놀림감의 대명사로 사용했을 뿐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를,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 후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도 나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들을 몇몇 만나게 되었을 뿐 나와 다른 이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니 차이에 대한 인식, 평등과 인권에 대한 인식은 어쩌면 거의 바닥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막연한 휴머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문제였다.


대학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주로 고민했던 것은 민족의 문제였다. 조직의 방침을 일관되게 관철하며 대동단결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배워왔던 탓에 소수파의 입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분열적일까 생각했던 자신을 돌이켜보면 낯이 뜨거워진다. 복학해서 운동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게 되고, 비주류적인 입장에 처하면서야 비로소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차이를 차별로 오용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소수자 운동에 대해 쉽게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동성애자들에 대해 알게 되고, 장애인 이동권 쟁취투쟁에 대해 알게 되고, 이주 노동자들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은 성에 대해, 평등에 대해, 민족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힘겹게 수정하는 시간이었다. 그 과정은 스스로 깨우치는 시간이 아니었고 그들의 피맺힌 투쟁 앞에서 내가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던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 아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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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어렸을때 친척 중의 누군가가 예의 그 사촌과 친해지는 방법을 자상하게 알려주었다면, 선생님 중의 누군가가 특별반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좋은 대학에 가는 방법만을 알려주었던 정규교육과정에 인권교육이라는 것은 개념조차 없었고, 운동진영에서도 인권을 주요 의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이 지나서부터였다.


  그래서 인권과 평등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을 참 더디게 형성해갈 수밖에 없었던 나는 이번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인권만화 <사이시옷>같은 책이 더할나위 없이 고맙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쉽게 쉽게 읽으며 인권감수성을 키워가고, 이미 가치관이 형성된 어른들은 자신의 인권감수성 지수를 확인하면서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한권씩 사서 돌려보고 선물도 하면 더 좋을 책, ‘사이시옷’을 꼭 읽으시라! 이말 하는데 잔소리가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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