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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한국사회와 가난 ③ - 강남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8 14:57
조회
585
기획 [한국사회와 가난] ③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톨릭신문 기자


 웬 십자가가 이리도


 구룡마을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다른 곳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유독 캄캄한 마을 한가운데서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십자가들이다.


 그 흔한 학원이나 편의점은 물론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마을에 교회는 무려 13개나 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집을 찾게라도 되면 대개는 불쑥불쑥 십자가가 솟은 개신교 교회가 꼽힌다.


 “뭣 하러 저러는지들 몰라. 나중에 교회라도 지으려고 저라나….”


 교회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내놓고 뭐라고 하지는 못해도 ‘뭘 노리는지 다 알겠다’는 말투다. 주민들의 불신이 배어나오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같은 교단 소속 교회인데도 몇십 미터 거리를 두고 경쟁하듯 간판을 달고 있는 것 자체가 마을 주민들로서는 마뜩찮다. 거기다 그 많은 교회 가운데 주민들을 위한 복지나 교육 사업 등 대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은 단 한군데뿐이어서 주민들의 생각이 비뚤어졌다고만 하기도 힘들다. 교세 확장을 위해 개척(?)에 나섰다고도 할 수 없는 게 상주하는 주민 수가 그리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 10여개 교회가 영역이 겹쳐 선교 효과도 미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뻔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회 성직자 중에는 마을 자치회 운영에도 깊이 간여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도 있어 토착 주민들로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모양새가 돼 불신만 쌓여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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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마을 입구에 위치한 자치회관 건물과 기도원의 모습


  딱지가 만드는 환상


 이렇듯 구룡마을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젖어봤을 이른바 ‘딱지’(임대아파트 입주권)라는 신기루가 만들어내는 환각 효과는 가히 위력적이라 할 수 있다. 당장 마을이 개발되면 과거의 삶과는 절연된 새로운 삶이 열리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환상이다.


 실제 운이 좋아 ‘딱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임대아파트는 주민 대부분에겐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처지로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근근이 입주했다고 치더라도 열에 아홉은 자신들의 수입으로 매달 20만원이 넘는 월세에 공과금을 감당해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서는 잊을 만하면 ‘개발’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개발 소식에 부화뇌동하는 주민들로서는 개발 이익을 노리는 건설사나 그런 건설사에 솔깃한 언론에 농락당하는 꼴이다.


 “만에 하나 개발이 되더라도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 없을 겁니다. 다들 헛물만 켜고 있는 셈이지요.”


 구룡마을에서 18년째 살아오고 있다는 김병찬(49)씨는 기자의 방문도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불만이 쌓일 만도 한 게 언론사에 나와 취재를 해가면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포장돼 나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들의 그런 행태가 구룡마을과 주민들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을에서 살아보지 않고 잠시 스쳐가는 이들로서는 마을 곳곳에 드리운 복잡한 속사정을 알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부인으로서는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주민들의 삶 자체가 한국 사회의 각종 모순과 얽히고설켜 몇몇 주민들의 말만으로는 마을에 관한 현상적이고 표피적인 접근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기 힘들 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구룡마을에 접근해온 기자들을 비롯한 ‘가난’을 겪어보지 않은 수많은 외부인들의 발걸음도 마을을 둘러싼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특히 강남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을 둘러싸고 벌이는 개발업자나 부동산업자들의 각축은 이익에만 눈이 멀어 고도로 응축된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한꺼번에 마을에 풀어놓은 결과를 낳아 더욱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게 만든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오랜 세월 가난의 굴레 속에 살아왔던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준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개발이라는 ‘깨진 독’에 쏟아 붓고 있는 모양이다.


 삶의 붕괴를 부추기는 사회, 그리고 몸부림


 믿을 수 있는 정책의 부재가 혼란과 문제를 가중시키는 현실은 구룡마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이라고 해봐야 마을 전체를 통틀어 120여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관할 구청에서 주민들의 안전과 화재사고 예방을 위해 전기안전 점검을 실시하기 시작한 것도 화재가 잦아 대형사고의 위험이 커지던 2004년 3월 이후부터다. ‘행정의 개입이 불법거주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판단으로 인해 이어져온 이러한 행정의 부작위는 결국 문제만 키워온 결과가 됐다. 그렇다고 다른 기관들의 움직임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곳을 향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구룡마을자치회 회장이기도 한 김병찬씨는 구룡마을이 언젠가는 끊임없이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자본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가족이 살아왔고 자식들을 키워낸 마을이 공동체성을 유지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꿈을 털어놓았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주민들을 짓누르고 있는 무지를 털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김 회장은 주민들을 위한 무상교육 터전 건설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누구도 꿈꿔 보지 못한 원대한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가 내놓은 무료직업소개소 설립, 공동작업장 개설 등의 꿈은 자신의 삶에 사랑을 지닌 이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희망이었다.


 “이곳에서마저 쫓겨나면 이번에는 경기도 어디쯤으로 흘러가겠지요.”


 자조 섞인 김 회장의 미래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가난 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해온 공동체가 난폭한 자본의 풍랑 속에 좌초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에 안착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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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판자촌 너머로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그래도 희망은 자란다


 옛 구룡마을자치회관은 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자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바로 회관 1층에 자리잡은 ‘구룡바오로공부방’ 때문이다. 공부방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아이들로 하루 종일 분주하다. 지난 2002년 2월 인경희 수녀(모니카·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비롯한 몇 명의 수녀들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일기 시작한 변화다. 처음엔 무슨 일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돈벌이 나간 사이 갈 곳 몰라 하는 아이들을 하나둘씩 모아 자신들의 비닐하우스에서 밥을 챙겨 먹이고 놀아주기 시작했다. 오후 서너시가 돼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수녀들의 방은 공부방으로 변했다. 홀로 사는 노인을 방문하며 어려움을 돌보는 한편 그해 가을부터는 빈민사목위원회의 주선으로 강남성모병원 가정간호과에서 나와 가정간호 서비스도 제공해오고 있다. 처음엔 “수녀들이 이곳엔 왜 왔냐”, “성당 지으려고 그러냐”며 경계하던 마을에서도 회관 한쪽을 내줘 놀이방이 꾸며지고, 이제는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공부방도 생긴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발적으로 공부방을 찾고 있는 아이들이 30명이 넘는다.


 지난해 5월에는 7살부터 중학생까지 40명 가까운 아이들로 스카우트도 만들었다. 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아이들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띠어 가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이 수녀들에게 쏠리자 자연스레 부모들의 마음도 모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에게 스카우트 지도자 훈련 등을 시켜 아이들과 함께 활동을 하게 하면서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드러나지 않는 변화가 하나씩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많이 변했죠. 자기 주장을 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챙길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이들로서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모니카 수녀는 그간의 변화가 대견스러운 표정이었다. 피해의식으로 외지인들에게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지난해엔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학교를 파했는지 공부방 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향해 연신 행복한 미소를 보내는 모니카 수녀, 자신의 아이인 양 아이들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맞이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에서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은 풋풋한 희망의 내음이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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