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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한국사회와 가난 ⑥ 교육 - 가난한 이들에게도 파랑새는 있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6:10
조회
312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톨릭신문 기자


 선미(가명·초교4)의 칭얼거림이 쉬이 그칠 태세가 아니다. 요즘 들어 투정이 는 게 또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선미는 엄마가 없다. 낳아준 엄마가 없는 게 아니라 돌봐줄 엄마가 없는 것이다. 엄마가 아침상을 차려놓고 일을 나가면 학교를 파한 후엔 공부방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저녁 무렵 다른 아이들이 자기네들 집으로 하나둘 돌아간 후에도 혼자만 남아 있기 일쑤다. 그래서 선미에게는 또 한명의 엄마가 생겼다. 김혜원(가명·39)씨가 선미의 새 엄마다.


 선미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보다 키워주는 엄마 김씨와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김씨가 한참을 달래며 놀아주자 그제야 울음을 그치는 선미. 그래도 좀체 왜 울었는지 입을 열지 않는다.


 선미는 엄마가 없다


 서울역 앞, 쪽방촌. 서울 중심가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서울역 맞은편 쪽방 거리를 찾아들어가 ‘공부방’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 “저 쪽으로 가봐요”하고 ‘○○○공부방’을 가르쳐 준다.


 쪽방촌에 공부방이 들어선 건 지난 2000년, IMF의 후폭풍이 한창일 때였다. 서울역은 노숙자로 넘쳐났고 그에 따라 아이라곤 쉬이 찾아보기 힘들었던 쪽방촌에도 아이들 숫자가 몰라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노숙자들 사이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부터 노숙자로 전락해 쪽방촌을 찾아든 어른들의 아이들…. 이렇게 해서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에도 어쩔 수 없이(?) 교육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쪽방거리에 처음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공부방이라기보다 그냥 아이들이 놀다가는 놀이방에 가까웠다. ‘최초’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11평 남짓한 허름한 옥탑방을 개조해 조금 깔끔하게 꾸몄다 뿐 쪽방촌에 오래도록 배인 냄새까지는 어찌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공부방은 쪽방거리 아이들에겐 난생 처음 맛보는 천국이었다. 쾨쾨한 자신들의 집에 비하면 산뜻한 내부에 장난감이 있는 공부방은 하루 종일 있어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선미도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집에 있는 시간보다 공부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엄마가 일터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엔 공부방 한 모퉁이에서 잠도 청한다. 엄마 외엔 피붙이라곤 없는 선미이지만 공부방에서 처음으로 정을 붙일만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제 공부방에는 정을 붙일만한 사람들이 넘친다.


 아이들에 늘어나면서 공부방은 한 차례 이사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만 늘어난 아이들이 함께 지낼 만큼만 공간을 늘였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10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방을 제 집처럼 수시로 드나들게 되었다.


 공부방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정준기(가명·32)씨에게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은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쪽방에서 희망이 부쩍부쩍 자라는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주위로부터도 별 관심을 얻지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방을 통해 조그만 희망이라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정씨가 처음 공부방으로 봉사를 나왔던 4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은 상황이 훨씬 나아진 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대개 한두 가지 병을 지니고 있었다. 영양 불균형과 열악한 환경이 대부분의 이유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제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 아이들은 당연히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있기 일쑤였다.


 “같은 학년 아이들에 비해 공부방 아이들의 학력이 크게 떨어져서 심각한 지경이었습니다. 심한 경우는 일대일로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공부방 교사들은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이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아이들의 요구 수준이 늘어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봉사자들이 일궈낸 또 하나의 희망인 공부방은 이제 쪽방 사람들에겐 없어선 안 될 희망을 채워 가는 ‘사랑의 곳간’이 되고 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못 난다


 갈수록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교육의 불평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떨치기 힘든 ‘가난의 굴레’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1년에 몇 차례씩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를 오르내리는 해외 명문대 입학생이나 국내 유수의 명문대 입학생들에 관한 기사들을 분석해 이들의 가족력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의 부모 대부분이 고학력이며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조기 해외유학 경험이나 해외연수 등은 오히려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발표를 보면 이 같은 현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부모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자녀진학률이 높을 뿐 아니라 대·중소도시와 농촌 간에도 성적 차이가 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다. 미국의 대학능력평가시험(SAT)을 주관하는 칼리지보드(College Board)가 최근 공개한 2006년 SAT성적보고서를 보면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SAT점수가 높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연간소득이 1만달러 올라갈 때마다 영어와 수학 점수가 각각 13.3, 11.8점씩이나 높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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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가까운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요미우리신문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일본국민 75%가 ‘부모소득이 자녀 학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원인을 고소득 가정일수록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강한 나머지 사교육열풍이 급속도로 번지는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결국 학력도 인적투자에 비례한다는 것이 증명돼 부모-자녀 학력 ‘대물림’ 현상이 입증된 셈이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고소득층 아동들은 고액의 사교육을 받고, 명문학교에 입학하고,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게 된다. 결국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 결혼해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저소득층 아동들은 학교 정규교육 외에 받는 사교육이 거의 없고, 고액의 사교육을 받는 아동들에 비해 학업 성취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또 비싼 입학금과 수업료로 명문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우며, 종사하는 직업도 전문직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이러한 현실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력이 학벌, 나아가 사회적 지위와 등치되게 되면 그 사회는 양극화로 인한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로 인한 갈등 요인은 더욱 증폭돼 나타나기 마련이다.


 저소득층 아동의 열악한 교육환경


 저소득층 어린이나 학생들은 방과 후 갈 곳이 없다. 저소득층을 살펴보면 결손가정이 적지 않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방과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저소득층 자녀들의 건전한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으로 사회복지관의 프로그램들이 있으나 그 숫자나 활동 내용은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일부지역에 종교기관을 비롯한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공부방이 있기는 하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보호가 필요한 대다수의 아이들이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정부차원에서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보호 급여는 입학금 및 수업료 지원에만 국한되어 있다. 그 외에 소요되는 학비 지원과 함께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교육 성취 프로그램과 건전한 성장을 위한 환경조성에는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간단체의 손을 빌어 생색내기 예산지원을 하고 있는 정도일 뿐이다.


 정부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저소득층 자녀들이 빈곤의 세습을 끊고 더 나은 미래의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전체의 공동의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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