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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한국사회와 가난 ⑧ 자활을 향한 몸짓들 -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 그럼 우리가 알아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8:14
조회
301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톨릭신문 기자


 “하도 서서 일을 하다 보니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혼났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하지만 신나서 일하다 보면 손끝 하나하나마다 기가 모이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연신 다리미질을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작업장을 오가는 김문선(42)씨의 얼굴에서는 잠시도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꼬박 서서 하는 일이지만 김씨를 비롯한 9명의 식구들은 고단함도 잊은 모양이다.


 서울 강북구 미아5동 674-12, 천주교 미아5동성당 뒷골목을 돌아들어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봉제협동조합 솔샘일터’는 겉만 보면 비슷한 일을 하는 여느 봉제공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솔샘일터(대표 신덕례)에서는 조합원 9명이 모두 주인이다. 매달 9명이 운영위원회를 열어 한 달 수입과 지출, 활동 계획 등을 논의한다. 월급과 상여금, 배당금은 물론이고 정기적으로 있는 교육과 야유회 같은 활동도 모든 조합원이 함께 결정한다.


 이제는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솔샘일터의 출발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지난 1993년 10월 가정집 방 두 칸을 빌려 문을 열 당시만 하더라도 주위에서는 얼마나 갈까 하는 의구심어린 눈길이 더 많았다. 그래서 처음 1년간은 간판도 내걸지 않고 사업자등록도 보류한 채 스스로의 힘으로 자활공동체를 일궈내겠다는 꿈 하나만으로 버텼다.


 정식 출범 2년이 지난 96년부터는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먼 꿈으로만 생각되던 배당도 꾸준히 이뤄지게 됐다. 배당 때마다 조금씩 출자를 해 이제는 조합원들의 출자금도 수 백 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렇다고 조합원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 건 아니다. 월 평균 수입이라고 해봐야 본봉에 각종 수당을 합쳐도 100만원 남짓한 액수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웬만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공동체로 뿌리를 내리면서 이제는 주위의 부러움 섞인 눈길까지 받게 됐다.


 그간 숙련된 기술로 다른 곳으로 가면 더 나은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솔샘일터의 누구도 그런 생각을 않는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힘으로 일궈온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사랑 때문이다. 각을 않는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힘으로 일궈온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사랑 때문이다. 김문선씨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까닭을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빠듯하게 먹고 살지만 기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이 일을 그만 두고 싶지 않은 이유랍니다.”


 성장 배경에는 대안금융공동체가


 솔샘일터가 이렇듯 자부심과 사랑으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명례방협동조합’이라는 대안(代案)금융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수도단체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후원회원 등이 출자금을 모아 지난 1993년 9월 설립한 명례방협동조합은 무담보 신용대출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생산공동체운동을 지원함으로써 자활의 첫 걸음을 내딛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이웃이 되어왔다.


 당시 조합원 75명에 자본금 3,500만원으로 시작된 협동조합은 현재 출자금 8억400만원 중 적립금(10%)을 제외한 7억2,000여만원을 515명(단체 포함)에 지원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조합의 지원으로 솔샘일터뿐 아니라 우리옷 생산공동체 ‘옷과 사람들’, 생활한복 제작공동체 ‘신림 민들레생활한복’, 전남 순천의 유기농생산협동체인 ‘화목공동체’, 도시락생산협동체 ‘한솥밥’ 등의 공동체들이 새로운 자활의 길을 찾음으로써 우리 사회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명례방협동조합처럼 무담보 소액대출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자활을 돕는 대안금융은 2006년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와 그가 설립한 그라민은행을 통해 새롭게 부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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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담보 소액대출의 모범이 된 그라민은행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라민은행은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신용대출)를 활용해 방글라데시의 수많은 빈곤여성들을 창업을 통한 기업활동으로 이끌어 빈곤 해소와 여성의 지위 강화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그라민은행의 운영 방식과 마찬가지로 명례방협동조합은 가난하다고 아무에게나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자활의지가 강하고 나름의 비전을 가진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를 대상으로 종자돈을 빌려주고 이자도 꼬박꼬박 받는다. 그러나 돈만 빌려주고 이자에만 눈을 돌리는 시중은행과는 달리 대출을 받아간 가난한 이들이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그들의 홀로서기를 같이 고민해준다는 점에서 일반 대부은행과는 판이하다.


 명례방협동조합이 일궈낸 성과는 가난한 이들이 큰 부자는 못 되더라도 오랜 가난의 굴레를 벗게 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방치되어온 우리 사회 사각지대의 가난한 이들을 연대의 틀로 끌어안아 왔다는 것이다.


 가난 극복, 우리 손으로


 이러한 무담보 소액금융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지난 2000년 즈음이다.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이 급증한 데다 2002년 카드대란 이후 신용불량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들이 대부분 금융 소외계층으로 전락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조합’ 등 4곳이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설립된 사회연대은행이 지금까지 지원한 곳은 320개 업체, 430여 가구에 달한다. 다른 마이크로크레디트에서 지원한 것까지 합치면 대략 전국 700여 가구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자활 기회를 다시 얻고 있다.


 빈곤가정 자활지원 단체인 부스러기사랑나눔회가 그라민은행을 본 따 설립한 ‘신나는조합’의 경우 연 4%로 1인당 100-500만원을 무담보로 소액대출 해오고 있다. 이 사업으로 신나는조합은 지금까지 총 2억5천만원에 이르는 대출을 통해 28개 창업 소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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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은행, 2003년 그라민은행을 본따 설립되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현재 신나는조합이나 사회연대은행과 같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기관의 주요 대출기금 재원은 국가·기업으로부터 기존 빈곤층 창업사업을 위탁받거나, 개인들에게 기부금을 받아 마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자활공동체 창업지원기금(20억원),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피해여성 창업자활사업(6억원), 근로복지공단의 창업지원사업, 삼성의 여성가장사업, LG전자의 사회공헌사업, 국민·조흥·산업·신한은행의 기금 등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무담보 소액금융이 그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안정된 재원 확보 문제에 전문 인력 부족, 법·제도적 지원 장치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도 금융권이 수익성에만 치중하면서 서민금융이 소홀해지고 있는데다 정부도 무담보 소액금융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주 누리․반딧불협동조합, 청주 나눔은행, 서울 ‘아침을 여는 협동조합’ 등 과거에 비해 많은 대안금융이 새롭게 생겨나 활동하고 있지만 출자액 목표가 1,00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지원액도 그리 크지 않고 창업이나 경영지도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이 창업 등을 통해 자활에 성공하려면 철저한 사전 교육을 통한 꼼꼼한 준비와 더불어 충실한 사후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등 사회적 통합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종자돈뿐만 아니라 자활을 위한 정보와 인맥, 신용도 빈곤하다. 따라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에서는 창업 기획에서 경영․기술자문, 판로 개척까지 전문가들이 돕는 것이 기본이다. 사회연대은행의 경우 미용서비스, 공예, 세무, 제과, IT(정보기술) 등에 걸쳐 다양한 봉사자들이 활동하며 자활을 돕고 있다.


 빈부격차 심화와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지배 등으로 금융의 공공성이 취약해짐에 따라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역할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가난한 이들 간의 연대가 더욱 절실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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