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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장애인’이 아닌, ‘장애를 가진 사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0 14:24
조회
397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필자가 대학에서 인권과목을 강의하며 시청각자료로서 활용하는 <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인권단편영화 모음 중에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이라는 14분짜리 작품이 있다. 그것은 한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일상적인 삶과 감정의 기록을 짧은 장면들로 구성한 영화인데, 특히 세종로 네거리를 홀로 무단 횡단하는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장애인들이 “우리도 버스를 타고 싶다!”며 버스에 자신들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고 절규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미국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임을 우리는 본다. 휠체어 표시가 붙은 버스가 짧은 간격으로 다니며 장애인이 탈 경우엔 버스가 멈추고 기사가 나와 휠체어를 밀어 버스에서 자동으로 내려오는 발판 위로 휠체어를 탑재한 후 안전띠로 동이고 버스가 출발한다. 승객들은 어느 누구도 시간이 걸린다 하여 투덜대기는커녕 기사가 제대로 장애인 승객을 대하는지를 지켜본다.


 이 장면을 목격하던 필자는 장애인들이 행복한 나라여야 진정으로 문화선진국이자 선진 민주국가라고 생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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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섯 개의 시선' 중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일상적인
삶과 감정의 기록을 짧은 장면들로 구성한 '대륙횡단'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영화 '여섯개의 시선'


 이에 덧붙여, 필자는 인권연대 주최의 2006년 여름 교사인권강좌 자료집에서 접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박숙경씨의 글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인권”에서 귀중한 깨우침을 얻는다. 장애는 사고나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90% 이상이라 한다. 한창 잘 나가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나 사업가들이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거나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고통을 받는 것을 자주 보며 필자는 장애가 참으로 가까이 있는 것임을 절감하곤 한다.


 사실, 장애인은 대한민국 인구의 약 10%인 450만명에 근접한다고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인들을 여전히 나와는 ‘다른’ 존재, 더 나아가 나와는 ‘틀린’ 존재로 인식하며, 장애인이 이름을 가진 ‘사람’ 누구누구이며 단지 ‘장애’를 더 가졌을 뿐임을 잊고 그저 ‘장애인’으로만 분류하지는 않나? 말 한마디, 냉랭한 태도, 차갑거나 동정어린 시선 등에 의해 ‘특별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상처이자 인권침해라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토로한다.


 1999년에 발간된 <한국장애인인권백서>를 보면,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그들의 처지를 공연히 부각시키거나 그들을 비하하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장애만 없어도 큰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이 주는 상처, 신문 지상에서 곧잘 접하는 “벙어리 냉가슴 앓기,” “절름발이식 국토개발,” “장님 코끼리 만지기” 등의 상투적 표현, 텔레비전에서 접하는 “바보” 등 장애를 빗대어 웃음을 만드는 코미디 프로그램 등이 커다란 상처를 준다고 한다.


 장애인은 ‘장애인’이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장)애자, 불구자, 병신, 기형아, 장님, 봉사, 애꾸, 벙어리, 귀머거리 등등의 용어 자체가 곧 인권침해라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있는가. 더 나아가, 밥 맛 떨어진다고 못 들어오게 하는 식당, 자필서명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카드 발급을 거절하는 은행, 수화통역사를 대동하고 오라고 면박을 주는 관공서나 경찰서, 방 한 칸을 얻으려 해도 재수 없다고 거절하는 집주인들, 장애인이라고 면접에도 못 오게 항상 서류전형에서부터 낙방시키는 기업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고 하여 혼사가 파혼되는 사례 등, 사례는 참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반면에, 최근 영어로는 장애인을 “people with different abilities" 혹은 “differently abled”라고 한다. 장애를 “disabled"(능력이 없는)라고 표현하지 않고, (보통 사람은 못하는) “다른 능력을 가진”으로 보는 것이다. 또는 “physically challenged"(“신체적으로 어려운 도전을 받고 있는,” 그럼에도 잘 극복하고 있는)이라고도 한다. 팔이 없어도 입에 붓을 물어 그림을 그리는 훌륭한 화가들, 휠체어를 타면서도 팔다리 멀쩡한 선수들보다 슛이 정확한 농구선수들을 우리는 본다.


 과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 성한 이들의 편견이 곧 ‘장애’ 아닐까? 그런 성한 이들이 ‘비정상’ 아닐까?


 이제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부지불식간에 가하는 언어폭력부터 줄여야 하겠다. 예를 들면, 장애인을 명사형으로 고착화하지 않고 그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훨씬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휠체어장애인 OOO씨”라는 말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OOO씨”, ‘장애인’보다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낫다. 그리고, ESCAP(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가 제시한 바 있는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용어 사용 및 인터뷰 지침인 “장애가 이야기에 있어 중요하지 않다면 부각시키지 말라”는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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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건이후 결성된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청역 선로점거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사진 출처 - 장애인이동권연대


 그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배려는 쉽고도 많다. 지체장애인들과 만날 약속을 할 때엔 그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미리 알아볼 것,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엔 먼저 상대방의 손을 이끌어 잡는 방식으로 악수를 할 것, 청각장애인들과 구화로 대화할 때는 일정하고 약간 느린 속도로 바르고 큰 입 모양으로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약속시간, 약품명 등은 꼭 글로 써서 대화할 것, 뇌 병변 장애이어서 손이 불편해 필담을 못하면 휴대폰의 문자로 간단히 소통할 것, 정신지체장애를 가졌다고 무조건 반말을 하거나 어린애 다루듯 하지 말고 “위험하다” 혹은 “귀신들렸다”는 식으로 여기지 않을 것, 등등은 실천하기 어렵지 않다.


 이렇듯, 장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은 모두가 함께 사는 일, 곧 ‘분리’가 아닌 ‘통합’으로써 인권과 연대를 실천하는 일이다.


 서두에서 언급된 <대륙횡단>이라는 영화에서 장애인 친구는 주인공과 소주를 마시면서,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 게 우리의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는 장애인이동권 쟁취 집회에 나가 구속된다. 그 장면을 우연히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고 주인공은 죽을 위험도 마다않고 세종로를 가로지르는 ‘대륙횡단’을 감행한다.


 2001년 1월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건이후 결성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활동사례에서 보듯이, 그 이후 장애인 권리의 주체가 장애인 운동의 주체로 나섰고 장애계가 총체적으로 연대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UN에서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우리 모두가 함께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한국 사회의 인권수준이, 아직은 휠체어에 의존하는 정도이지만, 여느 나라의 경우처럼 버스 정도는 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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