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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온 우주보다 무거운 21 그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0 15:45
조회
178

최철규/ 인권연대 간사


 굳이 한 사람의 가치를 무게로 따지자면 과연 얼마나 될까. 원래 생김새도 다르고 늙고 병들어 가는 육체의 무게는 다양한 삶들의 흔적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니, 사람됨의 잣대로 종종 쓰이곤 하는 그 영혼성의 무게로 가늠해 보자.


 영화적 상상력은 사람 영혼의 무게를 ‘21g’이라고 했는데, 이는 미국의 던컨 맥두걸 박사가 1907년에 과학 저널에 발표한 ‘학설’에 근거를 둔다. 맥두걸 박사는 사람이 숨을 거두면 반드시 체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관찰을 통해 줄어든 체중이 21g이라고 했다.


 물론 이 실험은 사람의 영혼도 하나의 물질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 것인 만큼, ‘사람의 가치’를 따지기엔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21g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서는 최소한 21g만큼만의 무게감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故 허세욱 씨를 죽음으로 내몬 건 사회의 천박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며 분신했던 허세욱 씨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길거리에서 사회의 복원을 외친 그의 사회적 죽음에 정작 사회는 무관심할 뿐이다. 세금 내는 주인을 무지하다고 구박하며 맹목적으로 협정을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는 온 몸을 불사르며 절규한 한 국민의 외침에 어떠한 가치도 부여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이 정부는 명분도, 의의도, 더 이상 정부라고 주장할 권리도 없다. 정부가 그의 요구를 외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누구든 정당한 주권 행사를 보장받지 못해 결국 막다른 삶의 퇴로로 걸어들어 갈 수 밖에 없다면, 그 자체가 민주정부의 무능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의 몫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고인의 죽음을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전 삶과 분노 앞에 그에 상응하는 진실함으로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다수 시민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뼛속 깊이 새겨진 정치적 소외로 자신의 삶을 더욱더 변두리로 내쫓고,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끝없이 되뇌는 많은 사람들은 미래를 변명삼아 오늘의 죽음을 쉽게 외면하고 있다. 흔히 자살은 삶이 무의미하다는 일종의 자기고백이라는 얘기를 하곤 하지만, 최소한 고인에게 삶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삶에는 의미가 있음을,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협박에 버금가는 강제 추진과 협정이 약속하는 암울한 미래는 그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최후의 위협이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삶에 대한 냉소와 환멸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무시하고 삶을 무의미한 일상으로 전락시키려는 사회의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 누구도 그의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한 무책임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무책임한 것은 그 저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기만과 냉소에 빠져 있던 한국 사회의 천박한 오늘이다. 정치적 소외와 경제지상주의를 운명인 듯 체념하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잊어버린 바로 그 천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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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허세욱님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정치와 경제가 아닌 ‘정치경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어떠한 대안적 논의도 거부한 채 철저하게 미국화를 시도한 한미 FTA는 천박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시대적 징후다. 정치와 경제를 가르고 협정이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라고 주장하는 반과학적 미신에 천박성의 근원이 있다. 무지의 밖에 선 진실은 전혀 다르다. 정치는 기꺼이 경제의 노예가 되기를 맹세하였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민주적 권한을 미래의 경제적 과실을 사는데 헐값으로 넘겨버렸다.


 정부가 철저히 비밀협상을 할 때에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합리적인 반대 주장엔 비이성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정작 협상이 타결되자 앞으로 이성적인 토론을 하자는 기만적인 제안을 할 때에도 시민들은 사기 당한 그들의 민주적 권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명태잡이 어민 700여명이 입을 피해가 뭐가 대단하냐고 호통하는 대통령의 ‘광기’를 용인 할 만큼, 한국 사회의 반인간주의․경제지상주의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를 포기해 얻을 경제적 미래는 없다. 경제지상주의가 ‘언젠가’ 인간다운 삶이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은 터무니없다. 불행한 오늘의 반인간적 삶의 모습이 ‘이미’ 경제지상주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분리된 정치와 경제의 끈을 잇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나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와 경제가 결코 따로 있지 않고, 오직 ‘정치경제’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로 대변되는 근대 민주국가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다수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만, 경제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체제는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독점 자본 형성을 위해 철저히 반민주적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상이한 각자의 목적 때문에 국가와 자본은 필연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다수의 지지를 이끌기 위해 부의 곳간을 필요로 하고, 자본은 시장(사회)에서 게임의 규칙을 강제하기 위해 국가의 공권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와 경제의 상호의존적 공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두기와 상호 견제라는 가면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우위는 체제 전체를 파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비록 가면일지라도, 적절한 거리두기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사회 구성원들의 민주적 자의식과 정치적 실천이다. 감시와 참여라는 정치 행위가 ‘건전한’ 국가-자본을 이끄는 핵심인 셈이다.


 가장 낮은 이들에게 굴복하라


 여러 나라에서 그나마 사회민주주의적 실험이 성공적으로 가능했던 것도 삶의 곳곳에 정치적 실천의 전통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식 세계화로 구체화되는 신자유주의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민주적 자의식과 정치적 실천을 경제적 허위의식으로 둘러 싸 철저하게 무장 해제시키고, 사람들을 오로지 자본의 경쟁 논리만을 숭배하는 천박한 경제적 동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故 허세욱 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 죽음에서조차도 묵중한 삶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천박성에서 전락한 존재의 넋 빠진 자화상을 본다.


 하지만 사회의 천박성은 역사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경제지상주의라는 허구적 감옥에 갇혀 오로지 미래만 바라보는 공허한 눈을 다시 오늘로 돌려 일상의 정치성을 복원하는 노력이 또 다른 역사적 과정을 만들 것이다. 미래는 오직 수치상으로만 존재하는 ‘비인간적인 것’이지만, 오늘은 따듯하게 살아 숨 쉬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심축은 존엄성을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가치로 품고 있는 ‘인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존엄성을 긍정하고, 존엄성의 언어로 사회를 그려나갈 때에만 인간다운 사회가 가능하다. 진부해 보이겠지만, 진부는커녕 이 땅의 모든 진보적 지식과 실천이 힘을 쏟아도 이루기 힘든 과제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존엄성 앞에 무릎 꿇는 것이 그 구체적인 방법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의 역사를 흐릿한 신화로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이름이 갖는 존재의 무게는 온 우주보다 무거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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