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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섬은 슬프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0 16:06
조회
199

전종휘/ 한겨레 기자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존재양식 자체가 고립을 상징한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섬의 슬픔은 무엇보다 스스로의 내재적 가치가 뭍에 의해 폭력적으로 침탈당해온 그 역사 속에 있다.


 오키나와가 그렇다. 13세기에 세워진 류큐 왕조가 1879년 일본의 침공으로 무너지면서 이 땅에는 피와 화약의 냄새만이 아름다운 해변을 메워왔다. 일본의 자치단위인 현으로 편입된 이후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일본 본토에 수탈당해야 했고, 전쟁 말기에는 수 만 명의 현지인이 징용과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온 한국인들과 함께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돼 숨졌다. 그렇게 이어진 미군 점령의 역사는 주일미군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진화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주일미군 재배치 문제로 십수 년 째 가열찬 투쟁을 벌여왔다. 미군의 후텐마 비행장을 헤노코로 옮겨오고 본토의 기지마저 이 곳 오키나와로 옮겨오려는 사업이 논란거리다.


 미군기지 반대투쟁에는 우치난주로 불리는 정통 오키나와인들이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일본 본토 사람들에 비해 얼굴선이 비교적 굵어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오키나와 전체 주민의 30-40% 정도로 추정되는 우치난주들은 외지인이 “당신도 일본인 아니냐”고 물으면 대단히 기분 나빠 한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겪어온 고난의 역사를 여전히 되새김질하며 일부는 일본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꿈꾼다.


 “제주에 해군기지는 안돼”


 섬의 눈물을 헤아리기 위해 그 먼 오키나와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의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로 들끓고 있다. 해군은 12만평의 제주 남해안을 매립할 계획이다. 해당 지역 해녀들은 완벽하고 항구적인 ‘직장폐쇄’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로 감귤나무를 바라보며 한숨짓던 지역민들은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며 다시 눈물짓고 있다. 물론 해군기지 후보지에 살지 않는 다른 제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역 경제발전에 기대를 걸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상지 가운데 한 곳인 위미1리의 오동옥 반대대책위 위원장은 기지건설을 경제발전으로 연결하는 건 미신이라고 단정한다. “1함대사령부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 송정동의 경우 실제 가서 조사해보니 1980년 4월 인구가 1만2500여명에서 지난해에는 5300여명으로 대폭 줄었더라고. 노인네만 남고 젊은이는 떠났다고 그래. 또 송정초등학교 졸업생이 같은 기간 270명에서 38명으로 줄었대. 경제발전은 무슨….”


 지난달 제주 현지 주민 인터뷰를 하던 중 뭉툭한 내 콧날이 순간적으로 식초를 뿌린 듯 시큰해졌다. 역시 해군기지 후보지 가운데 한 군데인 화순항의 한 주민이 “위미리건 화순항이건 해군기지를 제주에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때다. 그 때만 해도 서귀포시 강정동이 주민총회를 거쳐 기지 유치를 자원하고 나서기 전이라 위미리 아니면 화순항 둘 중 한 곳에 기지가 세워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던 때다. 그 주민의 말은 연대의 정신을 표명한 것이다.


 그 똑같은 얘기를 1년여 전 오키나와에서도 들었다. 후텐마 비행장이 위치한 기노완시의 요이치 이하 시장은 당시 “비행장을 이곳 기노완시에서 빼되 나하시의 헤노코에도 옮겨 짓지 말라. 아예 오키나와에서 나가라”라고 말했다. 요이치 시장의 말이나 화순 주민의 말이나. 섬의 슬픔을 아는 사람들은 충분한 면적의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최근 사라져버린 노들섬 맹꽁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서울시의 무분별한 땅고르기 작업에 서식처인 수로가 막히고, 땅이 압착돼 살던 집이 무너져 내렸을 그 맹꽁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들도 섬은 슬프다고 생각할까? 어딘가에 숨어 자신들에게 연대의 뜻을 밝혀줄 따뜻한 가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우린 장마철에야 한번씩 밖으로 나와 울어젖힌다는 맹꽁이들의 삶과 죽음을, 그들의 울음을 통해 확인하기 위해 장마전선이 몰려올 올 7월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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