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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지구를 담보로 한 위험한 ‘치킨게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0 15:48
조회
160

이광조/ CBS 피디


 ‘제2의 개국’이라고 칭송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소식이 모든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던 바로 그 주에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기후변화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인류가 지금까지의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할 경우 2080년쯤이면 평균 기온이 3.5도 이상 상승해 지구촌의 주요 생물 대부분이 멸종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겨 있다. 물 부족과 식량난, 전염병 확산, 홍수와 해수면 상승 등 할리우드 재난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접했던 대재앙이 현실로 닥칠 거라는 얘기다.


 기후변화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 2,500명이 6년 동안의 연구조사를 거쳐 발표한 보고서라고 하니 쉽게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한국이 지구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20개 국가에 포함된다고 하니 우리에게도 보통 심각한 뉴스가 아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10위권,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속도가 세계 최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책임도 그만큼 크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20개 국가


 하지만 인류가 ‘멸종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니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과학자들이 대재앙 가능성을 최대한 낮게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국 등 강대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 정부 관계자들이 보고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해 발표시간이 연기됐다고 하니 우리 사회와 정부만 탓하는 건 일종의 ‘자학’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를 보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4월 10일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보면 우리 협상단은 자동차 분야에서 배기량 기준 세제를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배출가스 자가진단장치 장착 의무를 2년 간 유예하고 배출가스 허용치도 2009년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보다 완화했다.


 미국 자동차가 들어오면 얼마나 들어오겠느냐, 뭐 그 정도 가지고 당장 큰 문제가 되겠느냐,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 단점도 있지만 FTA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다 등 여러 가지 반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세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비슷한 시각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가 온실가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내 13개 환경운동단체와 12개 주 정부가 연방 환경보호국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판결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환경보호국이 온실가스 규제에 소극적일 경우 각 주 정부가 환경보호국의 결정에 불복할 수 있고 환경보호국은 자동차 배출가스를 규제할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소극적인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심판한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협상단이 관철한 배출가스 규제 완화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소비자의 선택폭을 넓히고 각국이 서로 이익을 주는 자유무역협정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각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만 사로잡혀 인류에게 다가오는 재앙은 보지 못하고 국가 간 경쟁에 매몰되는 자유무역이라면 눈앞의 파멸을 보지 못하고 질주하는 무모한 ‘치킨게임’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파국이 임박했다는 얘기를 믿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수 천 년, 아니 수 백 년 뒤도 아니고 금세기 안에, 다시 말해 우리 자식들이 살아 있는 동안 지구상의 생물 대부분이 멸종할 수 있다는데, 지금 우리는 너무 태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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