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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나의 꿈을 짓밟지 말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1:47
조회
195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새벽 2시경, 밤을 지새기에는 몸도 피곤하고 내일 할 일도 있고 해서, 없는 돈에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쏟아지던 비도 그쳤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도 두 사람이나 들어갔으니 ‘오늘 밤 별 일은 없겠지’ 생각 했다.


 그런데 아침 9시경, 피곤한 몸을 부시시 일으켜 사무실로 향하는 나에게 문자가 날라왔다.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에 경찰이 들어와서 조합원들을 잡아 가고 있으니, 빨리 모이라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홈에버 매장에 당도해보니, 어제 밤 연대왔던 대열은 보이지도 않고 전경 버스들만 빼곡히 월드컵 경기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닭장차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매장 입구는 방패를 든 전경들에 의해 겹겹이 에워싸여 있었고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여성 조합원들이 하나 둘 끌려나오고 있었다. 우악스런 손길이 가녀린 여성 노동자의 사지를 번쩍 들어 닭장차에 밀어 넣자, 그녀는 울부짖으며 빠져 나오려 안간힘을 써 본다. 마치 영화에서 거대한 괴물이 사람을 번쩍 들어 한입에 털어 넣듯이, 경찰은 그렇게 여성 조합원들을 한명씩, 한명씩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 앞에서, 일개 시민에 불과한 나는 무력감을 느끼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파업에 공감하면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이 심정적으로나 거리상으로 너무나 가까이 있는 이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담배나 반찬거리 등을 사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슈퍼마켓, 할인점에서 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서민가정에서는 주부들이 아이들 학비라도 벌기 위해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이와 같은 유통 매장 아니면 식당이다. 그동안 노동시장에서 이들의 노동력은 부당하게 저평가 되어왔고, 업주들 또한 싼 맛에 고용해서 적당히 일을 시키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라도 짤라 버리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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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매장에 경찰들이 진입해 점거 농성을 펼친 노조원들을 연행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한 때 생활용품 업체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나는 제품을 팔기 위해 이런 매장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적이 있다. 매출 목표를 채우는 게 영업사원의 지상과제다 보니, 매장에서 자신들이 파는 제품이 더 좋은 위치에 진열될 수 있도록 서로들 엄청나게 경쟁을 한다. 그러다 보니 유통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영업사원들이 반드시 우군으로 만들어야 할 첫 번째 대상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음료수를 사들고 다가가 친한 척 너스레를 떨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가 끝날 때 쯤 “우리 제품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따금씩 그들이 하는 일을 도와줄 때도 있다. 한겨울에도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음료수, 세제 박스를 몇 번씩 날라다가(까대기) 진열하는 일들을 반복하고, 매장 진열 위치를 완전히 뒤 바꾼다든지, 재고조사를 하는 날에는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남들 쉬는 법정 휴일 날에 쉬지도 못할 뿐더러 월차, 생리휴가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직장생활은 아무런 미래가 없어 보였다.


 이런 곳에 정말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경쟁에 의해 철저히 개별화되어 있고, 다양한 근무형태로 점포마다 뿔뿔이 찢어져 있는 이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친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데 몇 년 후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냈다. 그 선봉에 까르푸(홈에버 전신) 노동자들이 있었다. 나는 비록 그 끔찍한 노동현장에서 떠나 있었지만 내 일처럼 기뻐했던 것 같다.


 내 경험 속에서 노동조합이 “진짜 있어야 돼”라고 생각했던 곳, 또 하나는 건설현장이었다. 그나마 잘 버티고 있던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짤리게 되자, 먹고 살기 위해 나는 건설현장 잡부가 되어야 했다. 욕설이 난무하고, 뙤약볕 아래서 온갖 허드렛일을 허리가 휠 정도로 해대도 “너 필요 없으니 내일부터 나 오지 마!” 작업반장의 한마디에 해고가 돼 버리니, 순간순간 눈치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이곳에도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아직 광범위하게 조직되진 않았지만 그 시작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걱정을 하지만, 어느 샌가 노동조합은 이렇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주변에까지 다가와 있다. 곳곳에서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아니고서야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들의 권리를 되찾아 준단 말인가?


 용접으로 굳게 밀봉된 매장에서 20여일을 버텨낸 뉴코아-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눈물과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을 방해하고 노조까지 파괴하려 했던 악랄한 사용자에 맞서 포스코 본사 사무실을 9일간 점거했던 포항 건설노동자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요즈음 내 마음속에서 오버랩 된다.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강제 진압의 공포와 배고픔을 견뎌내며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내발로 걸어 나오지 않겠다.’고 버텼던 결연한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그것은 너무나 많이 빼앗겨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는 사람들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질러대는 한이요, 독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정부는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점거할 때마다,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경찰력을 동원해서 건물을 포위하고 노동자들을 감금한 채 물과 전기를 끊고, 심지어 음식 반입마저 금지시키는 야만적인 ‘고사작전’을 전개한다. 작년에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던 포항건설 노동자들에게는 “국법 질서를 문란”케 만든 “폭도”라는 누명이 씌워졌고, 진압 작전으로 인해 2명의 노동자가 죽고, 70명이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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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포항건설 노동자에 대한 진압 작전으로 인해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였다. 사진은 하중근 씨의 장례식날 모습    /   사진 출처 - 프레시안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헌법과 법률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생산과정”을 실질적으로 중단시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행위를 ”불법“으로 몰아세우는 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다 해도, 공장이나 매장이 예전과 다름없이 가동되고 있다면 기업주는 노조와의 협상에 그다지 적극성을 띄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기업 경영진은 노조가 협상을 요구하면 시간을 질질 끌거나, 협상에도 응하지 않다가, 막상 파업에 들어가면, 불법적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해서 공장을 가동시키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노동자들은 물리력을 동원해 작업장을 점거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와 법원이 이것을 “불법”으로 몰아, 형사 처벌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파업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뉴코아-홈에버 노동자들, KTX 승무지부 노동자들, 포항건설 노동자들...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는 날, 우리 사회는 보다 인간이 살만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그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주고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나 같이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정부라면, 더 이상 국민의 꿈과 권리를 짓밟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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