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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우리의 인권은 당신들의 전리품이 아니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31 15:59
조회
191

한채윤/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http://lgbtact.org)


 전쟁이 벌어졌다가 끝나고 나면 승리한 자는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패자의 물건을 챙긴다. 그것이 바로 전리품이다. 하지만, 요즘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전리품을 챙기는 자들이 있다. 선전포고도 없이 전리품을 도둑질해가는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 정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진 않지만 여전히 경악스럽긴 하다.


 대체 그들은 어쩌자는 것일까. 차별금지법을 어느 곳에 어떤 장식품으로 전시하고 싶길래 이다지도 얼른 갖지 못해 안달을 부리는 것일까. 국민들의 인권마저 전리품삼아 뺏어가고도 당당한 저들의 후안무치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차별금지법’은 2003년 1월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가 꾸려질 만큼 일찌감치 준비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 사회에 광범위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으나 기존의 차별 관련 법률이 미흡하여 적극적인 차별 시정을 위한 실효성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둘째 헌법에 명시된 평등의 원칙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셋째 ‘정치적·시민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 ‘인종차별금지협약’ 등 국제적 합의에 의한 차별시정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 넷째 차별은 사회적 통합을 해치는 주요 요인의 하나이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제정취지아래 3년 반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어렵게 권고안을 만들었고 2006년 7월에 정부로 법안을 넘겼으며, 법무부는 2007년 10월 2일에 드디어 입법예고를 하였다.


 몰상식과 반인권의 극치인 ‘껍데기법’


 예상대로 이미 법무부안은 처음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안에 비하면 차별 시정의 효력이 있는 알맹이 조항들은 쏙 발라내어 버린 껍데기법에 가까웠다. 과연 뭔가를 ‘금지’할 수는 있을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차별금지에 대한 기본 개념을 제시하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나마 의의를 찾아보려 했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난도질과 도둑질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11월 2일 법무부가 법제처로 넘긴 최종법안의 차별사례 예시조항에서 학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전력, 병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그리고 성적지향까지 7개 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법을 삭제한 법무부조차 왜 삭제해야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공식 입장조차 발표하지 못하면서 기독교계 신문과의 인터뷰에선 기독교의 반대가 있어 ‘성적 지향’을 뺀 건 사실이라고 자랑하는 작태를 보자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법무부가 앞장서서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빼앗아 전리품으로 상납한 것이다. 누구의 개선장군 노릇인가. 대기업들이, 권력에 유착된 일부 보수 기독교계가 이 나라 정부가 섬겨온 왕이었단 말인가.


071114web10.jpg


 14일 오전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시민사회, 인권, 여성, 종교단체가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뉴시스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대외적으로 대한민국도 인권선진국이라고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 정부가 눈이 멀었다.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정도 법이라도 지금 만들어두는 것이 훨씬 낫다며 일단 만들고 나중에 부족한 부분을 고치자는 타협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역시나 싸움 없이 또 다른 전리품을 챙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단호히 선언하건대 허울만 번지르르한 법은 필요 없다. 가장 심각하고, 가장 부조리하고, 가장 억울한 차별들을 가장 나중에 구제하겠다는 발상을 가진 법이라면, 그건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고, 차별을 권장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젠 싸울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시민이라면, 헌법 정신에 새겨진 법 앞에 평등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치를 비교당할 수 없는 존엄한 인간이기에 싸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우리들의 인권이 힘 있는 자들의 전리품으로, 장식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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