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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55호]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17 17:57
조회
380

[함께 하는 이야기 Ⅱ]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김경환/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서울시 지하철 공사는 오는 7월부터 2-4호선 전동차의 최고 속도를 현행 80킬로미터에서 90킬로미터로 높이고, 평상시 역당 정차시간을 30초에서 20초로 10초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2~8분 정도의 단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을 떠올렸다.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 소식은 온 국민을 충격과 비탄에 빠뜨렸다.  


 1백92명이 사망하고 1백48명이 부상한 이 사건은 재난에 대해 완전히 무방비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시스템을 그대로 드러냈다. 화재 현장에 진입한 전동차의 문을 잠근 채 혼자만 탈출한 기관사의 한마디는 우리를 경악케 하기에 충분했다. “사령실의 지시가 없었다.”


 1백년만이라는 3월 폭설이 중부지방을 강타했을 때, 추위에 떨며 자동차 안에서 28시간을 갇혀 있어야 했던 운전자가 겨우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 나왔을 때, 매표소 직원이 건넸던 첫 마디는 우리를 절망케 한다. “요금 내셔야지요.” 중앙선만 제때 터놓았어도 수많은 운전자들이 차에 갇혀 밤을 지새우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도로공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


 이 정도 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된 시스템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개인들의 놀라운 경직성을 접할 때마다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오직 ‘지시’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에게 ‘임기응변’과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국가 폭력에 대한 과도한 공포, 군사주의 획일화 문화, 수직서열화와 상명하복의 풍토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생기발랄하게 살아 움직이는 개인, 창조성과 자주성을 지닌 주체적인 개인을 기대하기는 무망한 일이다. 경직된 조직 문화 안에서 조금이나 ‘튀려는’ 개인은 다음 한마디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니가 책임질 거야?”


 나는 얼마 전 끔찍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20분이 넘어도 전동차가 오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 전동차를 타고 겨우 출근을 하긴 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검색하다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누군가 전동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 것이다. 그것을 수습하느라 전동차가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죽음을 지나 생존의 터전을 향했다니! 모골이 송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동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자살자의 증가에는 여러 복잡한 정치경제적·사회심리적·개인적 배경이 있겠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당국은 뒤늦게 역사 안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니, 공익근무 요원을 배치하니, 허둥대지만 현재로서는 속수무책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전동차 속도라니!


 자랑할 것은 최고나 최대가 아니다. 박정희 개발독재가 남긴 최악의 유산이 바로 최대·최고주의와 빨리빨리 문화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이미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대구지하철 공사장이 무너지는 일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만반의 대비도 아직 갖추지 못한 상태이지 않은가.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안전과 생명존중 의식이 우선이다. 나는 현재의 전동차 속도에 만족한다. 아니 지금보다 더 느려진다고 해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몇분 몇초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쾌적하며 인간적이며 안전한 시스템이다. 속도를 높이는데 드는 노력과 비용을 여기에 투자한다면 안전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불안은 상당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인 안정과 긴장의 해소는 사람들의 정신건강과 의식 발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을 어떻게 속도를 통해 얻는 이익에 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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