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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이명박과 소외의 정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9-01 10:10
조회
199

전종휘/ 한겨레 기자


 2002년 6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고 서울시장에 당선된 때만 해도 내심 기대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개발시대를 대표하는 그가 다시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인다는 점에서는 마뜩찮았지만, 그 취지는 공감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도인 서울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에 40년 넘게 덮여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그 물길을 다시 사람에게 개방한다는 것은, 폐쇄에서 개방으로, 토목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라는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청계천의 겉모습은 썩 나쁘지 않다. 삭막한 도심의 휴식처로서 제 구실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요새는 그 인프라를 활용한 ‘청혼의 벽’처럼 부가적인 서비스까지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것은 복원의 과정이었다. 건설회사 회장 출신 시장에게 곳곳에 조선시대의 문화재가 숨 쉬고 있는 5.8㎞ 길이의 청계천을 복원하는 데는 2년 2개월이면 족했다. 시민들은 복원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지혜를 모아 해결해나가는지, 그 과정 자체를 즐길 권리가 있었으나 이는 무시됐다. 광통교와 수표교 등 각종 문화재 훼손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일을 추진하는 시청 공무원들은 대권이라는 원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시장님께서 퇴임 전 테이프커팅을 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꾸준히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것은 바로 시민이다. 3800억여 원의 세금이 투입된 이 거대한 사업의 진행 과정을 느끼고 즐기며 고민하는 과정을 생략 당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위행위와 같다. 남녀간, 혹은 동성 간의 사랑에서는 오르가즘 자체보다 그 것을 향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지만, 자위행위는 오로지 결과로서의 오르가즘만이 의미를 갖는다.


 이명박 시장 시절 이뤄진 숭례문 개방도 같은 맥락에 있다. 개방은 분명 진취적인 행정이었으나 숭례문의 안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문화재 관련 단체들의 지적은 반영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런 단체들이 소외된 듯하지만, 결국에는 숭례문 스스로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잿더미로 변하며 정작 자신이 소외돼왔음을 드러냈다. 실용의 이름을 달고 정작 중요한 과정은 생략한 ‘결과의 정치’ ‘보여주기의 정치’의 폐해가 텔레비전 생중계 화면 속에서 가장 스펙터클하게 구현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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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푸른 강물과 모래톱, 흰 급류의 조화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
 강천보가 들어서면 수장될 운명이다.    /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대운하라는 또 다른 소외의 정치를 시작했다. 대운하 사업이 시작되면,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터클 정치가 이 땅에서 구현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심지어 국립대학인 서울대 교수 100여명이 대운하 반대에 나섰지만 이 대통령의 눈에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 여론까지 수렴하되 1년 안에는 공사를 시작한다”는 형용모순의 언어 속에서 ‘개전의 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운하는 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킬 것이다. 수만 년을 따로 흘러 온 물줄기를 이어놓았을 때 이 땅에 닥쳐올 재앙을 걱정하는 이들, 물높이 확보를 위해 깎여나갈 강변의 풀과 수초 그리고 그 안에 숨고 알을 낳으며 살아온 물고기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 이틀 걸려 부산에서 서울까지 물건을 나를 사업자가 어디 있겠냐며 사업 자체의 타당성이 없다고 믿는 업계 관계자들, 개발의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가 깨어지고 흩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원주민들까지... 모두가 소외의 대상이다.


 사람은 그렇다 치자. 정작 가장 크게 생활 터전의 대변화가 불가피한 공사 대상 강줄기의 물고기들은 논의구조 속에서조차 빠져 있다. 어떻게 보면 그 강의 주인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인근 땅주인들이 아니라 대대손손 그 안에서 살아온 물고기들인지도 모른다.


 숭례문은 소외의 대가를 불로써 증명했다. 사람들에게 숭례문은 그냥 돌과 나무를 깎아 만든 건축물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 앞에 흰 국화를 갖다 바침으로써 사람의 죽음에 필적하는 예우를 갖췄다. 이제는 그 국화를 들고 강변으로 달려가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남한강에 사는 누치야, 낙동강이 보금자리인 붕어야, 금강이 제집인 버들치야, 영산강이 고향인 메기야, 너희들은 지금 너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알고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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