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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을 다녀와서... 임혜민/ 인권학교 3기 수료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8 13:18
조회
594

임혜민/ 인권학교 3기 수료생



오늘은 인권학교 3기 현장학습이 있는 날이다. 장소는 남영동에 위치한 대공분실이었다.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늦어서 남영역에 내리자마자 대공분실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대공분실인 듯한 건물을 발견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빠른 걸음은 멈칫했다. 어두운 건물외벽, 위압감이 드는 분위기가 내 안에서 묘한 감정이 일어나게 했다. 헐레벌떡 들어온 지금의 나와 87년 1월 연행되어 내가 서 있는 이 곳에 들어섰을 故 박종철 열사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그 때 그 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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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분실은 치밀하고 정교했다. 같은 방향임에도 층마다 필요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진, 아주 철저하게 공간 사용 용도에 따라 만들어짐에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조사실과 사무실은 마치 한 건물에 있는 공간이 아닌 듯했다. 특히, 건물 뒤쪽으로 1층에서 5층 조사실까지 연결된 통로는 피조사자의 두려움을 극대화시키고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통로였을 것이다.

이처럼 건물 곳곳에는 이 곳의 목적과 부합하는 아주 세심한 설계들이 발견된다. 대공분실의 설계자 김수근은 자신의 작품목록에 어째서 이런 ‘작품’을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공분실의 조사실은 대부분 리모델링 되었다.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지만, 아직도 감출 것이 남았었나보다. 진정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면 다시 복원해야함에 토를 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509호는 대공분실 중 유일하게 리모델링하지 않은 조사실이다. 이 방은 故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고 숨진 곳이기도 하다. 식사 하고, 대소변처리를 하고, 조사 받고, 고문 받고... 이 모든 것은 이 좁은 방에서 밤새도록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 자체로도 정말 잔혹한 고문인 것이다.

오창익 사무국장님의 “대공분실, 이것은 존재 자체로만으로도 인권침해”라는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이것이 과거엔 존재 자체가 문제였지만 이젠 역사적 공간, 시민들의 문화 공간 등으로 자리 잡아 독재정권 당시 피해자들의 아픈 기억을 조금씩 저 밑으로 내리 누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공분실을 둘러보는 내내 정의에 어긋난 독재정권의 경찰 활동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현재 6층에 위치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의 안내판을 보고 ‘인권보호’라는 말에 콧방귀를 뀌기도 했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렇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2의 박종철이 나오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뿐하기도, 그리고 무겁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