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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중용(임영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1-15 10:13
조회
117

임영훈/회원 칼럼니스트


 

갈수록 ‘중용’이 아쉽다. 풀어보면 ‘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庸’이란 평상(平常)을 뜻한다. 극한적 대립을 통해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각계각층,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안타깝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나도 억울하면 인터넷에 일방적 주장을 올린다. 술에 취해 타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쏟아내며 모르는 사람과 다툰 일로, 청와대 청원까지 해서 ‘내 잘못은 없다’고 강변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살다 보니 더더욱 안타깝다. 어릴 때 회색분자나 비겁한 양비론으로 치부해버렸던 중용의 자세는, 그나마 시간이 갈수록 이런저런 인생 선배의 조언들과 다양한 인간 관계들을 겪으며 더욱 그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종종 잔혹 범죄 뉴스가 들려온다. 잊을 만하면 일상적이지 않은 살인이나 폭행 치사, 강간과 같은 이해하기 힘든 중범죄들이 일어난다. 더하여 이런 뉴스가 퍼질 때마다, 그에 따르는 무수한 댓글들도 상당히 가혹하고 잔혹하다. 신체 훼손 같은 경우에는 똑같이 해주라느니, 저런 놈들을 보면 사형제 폐지는 말이 안 된다라던지, 이런 글들이 넘쳐난다. 이미 한 번 대중에 의해 사회적, 심리적으로 돌에 맞아 죽은 피의자들은 수사와 재판의 단계를 밟아 나갈 때마다 인민재판에 의해서 여러 번 다시 죽고 정신적으로 능지처참 당한다. 어느 한 쪽의 감정에 이입돼 극도의 증오를 쏟아내고, 구약 성경이나 중동 과격 단체에서나 나올 법한 섬뜩한 말들이 쏟아진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사안의 양면을 보려고 하는 중용이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다.


짚고 넘어가자면, 많은 인권 단체에서 피의자들과, 또 기결수라 할 지라도 수감과 출소를 거치며  나락으로 떨어진 분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권 단체들, 특히 인권연대의 다방면의 노력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 개인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일이고, 기부 한 기억도 없다. 주변에 이렇게 희생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나는 아직 해외 아동 원조와 같은 먼 나라의 일에 자의반 타의반 가입되어 있을 뿐,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그런 따스함, 어려운 이웃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세심함에 미치지 못한다. 인권 단체들은 개개인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돌보는 데 있어서는 일종의 사회의 균형 추를 자임하는 중용의 덕을 실천하고 있다. 실패의 나락에서 재기하고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반대편의 밝은 면을 보게 해준다.


잔혹한 범죄는 아니지만 그 전초전이랄까, 학교 다닐 때의 오래된 기억이 있다. 아이의 몸으로 술, 담배에 본드까지 하던 불량아들, 10대로 보기에는 험상궂고, 수업 시간에는 맨 뒷자리로 옮겨 잠만 잤으며, 학교를 안 나오거나 중간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가끔 붙들려서 혼나면 만만한 선생님들한테는 눈 앞에서도 대들었다. 아직 체벌이 있을 때였지만, 안 맞으려고 완력을 행사하거나, 점잖은 선생님에게는 말대답을 했다.


잊지 못하는 장면도 있다. 두 명이 종례 시간에 다투어서 시끄러워지자 선생님께서 한 명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셨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이 분을 못 참아 의자에서 나무 조각을 뽑아서 앞으로 던졌다. 못이 박힌 채로 그 나무 조각은 애들 머리 위로 날아갔고, 칠판에 맞아 떨어졌다. 그 때 당황하신 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속으로는 얼마나 분노하셨을까, 그래도 그 분은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려고 하셨다. 한편 무지막지하게 힘으로 치는 체육 교사와 같은 덩치에게는 애들도 설설 기었다. 중학생 애들이었지만 영악했다.


이런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나에게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너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애들이야. 니가 이해해야지. 집에서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학교에 오는 애들을 어떻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해결해주니?” 철없는 십 대 시절 그런 말이 와 닿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개인의 환경까지 고려해서 생각하는 배려가 있었다면, 학교 생활이 괴롭지 만은 않았을 것 같다. 중용을 일찍이 깨달았다면,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능력마저 생겼을 것이다. 현실은 선과 악으로, 모범생과 문제아로 나뉜 이분법이 적용되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조화롭지 못했다.



사진출처-구글


예를 더 들어본다. 타고난 보수적 성향과도 겹쳐져 (타고난 진보적 성향도 있지만),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행은 어느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일정 부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인간 사회에 그런 앞뒤 꽉 막힌 시스템이라는 것은 실패한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적어도 경제적 약자에게는 혜택이 될 것만 같았던 최저임금을 올리는 시도마저,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결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사회의 복잡성, 복합성이다. 무엇보다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된 최저임금 인상은, 대기업이 아닌 영세 자영업자에게, 무엇보다도 최저 임금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외려 실직과 근로 시간 감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실없는 예도 있다. ‘미친 놈’이란 말을 군대나 회사에서 수 없이 듣는다. 심지어 남자들 간에는 허물없이 쓰기도 한다. 남자들은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들어도 참아야 하고, 여자에게 ‘년’이란 말은 쓰면 안 된다는 암묵적 사회적 합의가 있다. 같은 의미이지만 어감의 차이와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만 것에 평등을 좇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체의 차별을 거부하는, 온갖 것에 숨은 차별을 찾아내서 기계적 평등을 이뤄야만 한다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욕설 등에서는 왜 굳이 남녀를 구분하고 일일이 그건 안 되고 다르다고 강조를 할까?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의무건 책임이건 권리건, 가리지 않고 평등을 주장해야 그 주장은 양쪽을 아우르는 중용의 덕을 갖추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인권 전반, 피의자의, 학교 현장의 인권 문제의 해결점이 무엇일까? 그런 정답이 있다면 이렇게 역사가 돌고 돌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애들을 구타하거나 착취하는 데에만 관심있던 일부 교사들,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문제아들, 학교 베란다가 떨어져 나가고 무너지는데 돈은 어디로 빼돌리는지 특목고 합격자 수만 늘리려고 했던 재단과 교장…. 중학교를 다닐 때, 또 졸업하고 나서도 그들만 솎아내면, 속칭 ‘적폐 청산’만 하면 이런 지긋지긋한 일들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지 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적폐라는 것들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내가 너 같은 범죄자보다는 훨씬 도덕적이야, 내가 너보다는 약자를 배려해, 난 여성이니까 너보다 당하며 살아 왔어, 난 가난하니까 부자인 니가 그동안 내 몫을 뺏어온 거야.’ ‘교육 현장은 너 같이 이상한 선생과 아이들, 교육부, 부패한 재단들이 망쳐 왔어. 그러니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이렇게 외치며 불평하고 투쟁한다. 어떤 면에서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단체건 그 구성원들에게는 나름의 역할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갈 수 있는 능력이 또한 중용의 힘이다.


이렇듯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어하는 열망과, 계층이던 성별이던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조소와 경멸은 다르다. 구조의 치환은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 아닌,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다. 종교 전쟁과 같이 서로의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인류가 그 동안 흘린 피와 파괴한 도시들, 자연 환경이 셀 수 없다. 역사적으로 퇴행하고 싶지 않다면, 같은 사회 안에서의 갈등을 치유하지 않고 조소와 경멸, 비하와 욕설로 증폭시킬 필요가 없다. 그렇게 타자를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므로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잡은 헤게모니가 그토록 비난하던 권력과 달라질 지의 여부는 거꾸로 자기 반성에 달려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야. 그들은 그렇게 살아 왔어.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단지 그렇게 습관이 든 것일 뿐이야.’ 청년 단체 안에서의 갈등으로 고민하던 때, 모든 일이 습관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대학 시절 아버지께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은 그게 습관이 되어 거뜬하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또한 그게 습관이 되어서, 오후에 일어나다 정오에 깨라고 해도 힘들어한다. 여기서 상호 간의 이해가, 중용이 출발한다.


한때 지나간 과거를 일일이 공부하는 게 싫어서 역사학이 아닌 사회학을 전공했다. 현실이 작동하는 원리만 알면 됐지 미주알고주알 지난 일을 다 알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갈수록 그게 얼마나 근본 없는 생각이었던가 싶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기계적 도식으로 맞추어서 어떤 시대를 의미 없고 잘못된 것으로 단순히 뭉개버릴 만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문화, 아이들이 길들여지게 된 폭력,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관습, 이런 것들은 모두 현실 세계를 지탱하는 과거라는 큰 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현재는, 미래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중용’으로 맞춰 나갈 수 있다. 과거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현재를 설계할 수는 없다. 과거의 전통적 기반에서 새로움을 모색할 때 현재는 튼튼히 뿌리내리게 된다.


여전히 반복되는 아이들의 폭력성, 갈수록 증폭되는 남녀갈등, 그리고 수시로 불이 지펴지는 계층 갈등에서 인권의 의미를 찾는다면, 케케묵은 ‘중용 사상’이 필시 그 등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간의 평화도, 남녀 간의 이해도, 노사 간의 협력도 중용에서 출발하지 어떤 일방적인 생각의 노골적 강요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싶다. 하지만 중용의 바운더리를 벗어난 경멸과 무시, 일방적 폄훼와 싸잡아 욕보이기, 배려와 존중 없음을 존중할 만큼 너그럽지는 못하다. 그리고 중용은 나 자신의 인권 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와 그 구성원들의 인권에도 중요하다. 누구던 ‘인간 답게’ 살 권리가 그들 자신의 인권이기도 하므로.


임영훈: 미국에 실을 팔고 있습니다. 가끔 천도 팔지만 어떻게 해야 팔리는지는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