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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가 ‘요즘 학생’과 ‘옛날 교사’의 세대 차이 때문? (박선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9-28 17:19
조회
291


박선영/ 회원 칼럼니스트


 여자 고등학생의 일상을 1인칭 게임으로 체험해본다면? 아침에 일어난 학생에게 퀘스트(게임 캐릭터가 해결해야 할 임무)가 주어진다. 첫 퀘스트 ‘무슨 속옷/양말을 입을까?’에서 학생은 검은색 브래지어와 페이크 삭스를 선택한다. 학교에 도착하자 교사는 ‘여학생이 발목을 가려야지, 남자 꼬시려고 검은색 브래지어 입었니?’라고 말하지만 ‘선생님의 말에 반박할까?’에서 학생은 ‘아니오’를 선택한다. 다음 퀘스트에서 하복을 착용한 학생은 같은 사이즈지만 기지개를 켜도 넉넉한 남학생의 하복과 손을 들면 허리가 훤히 보이는 자신의 하복을 비교한다. 복장뿐만이 아니다. 동아리 신청 퀘스트에서 축구 동아리를 신청한 학생은 체육 선생님에게 “여학생은 매니저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수업 시간에는 더 어려운 퀘스트가 이어진다. 국어 시간에 교사가 문학 작품을 해석하면서 여성적 어조와 남성적 어조로 구분하여 설명하자 학생은 이에 의문을 품는다. 사회 시간, 저출산 고령화를 설명하던 교사는 여자가 애를 안 낳아서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퀘스트 ‘교사에게 반박할까?’에서 ‘예’를 선택한 학생은 “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에요”라고 교사에게 말했다가 혼이 난다. 학교 복도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매일 그냥 지나치던 학생은 퀘스트 ‘나도 붙일까?’에서 ‘예’를 선택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뉴 룰즈(New Rules)팀의 십대 에디터들이 제작한 영상의 내용이다. 이 영상의 제목은 ‘이상한 학교의 앨리스’.



사진 출처 - 하자센터X닷페이스 미디어 캠프 <뉴-뉴놈>에 참가한 뉴 룰스(New Rules)팀의
십대 에디터들이 제작한 영상 <이상한 학교의 앨리스>


 게임 속 이상한 학교보다 현실의 학교는 더 심각하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스쿨미투’가 이를 증명한다. 얼마 전 서울 노원구 한 여고의 미투로 징계를 받은 교사는 무려 18명이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스쿨미투의 힘과 학생들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스쿨미투는 단지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해당 여고 졸업생들이 ‘OO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를 조직했던 것처럼, ‘성폭력을 뿌리 뽑는 것’이 스쿨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의지다. 최근의 스쿨미투 운동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지역별, 학교별 스쿨미투 계정을 통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성희롱, 성추행 등이 공론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교사들은 난색을 표한다. 스쿨미투 때문에 ‘교육적 신념을 지킬 수 없으며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일찍부터 성교육을 받아와서 자신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 그것을 표현하거나 신고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단지 그 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학생과 소통하겠다는 것일 뿐인데, 예민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들이 교사의 의도를 왜곡하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교육열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부 교사들의 일탈행위를 일반화한다고도 말한다. 더 나아가 교사 불신이 확산되어 교권이 추락한다고 걱정한다. 나는 교사들의 이러한 태도를 ‘남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요즘 아이들이 예민한 걸까? 그래서 교사의 언행에 대해서 성차별 혹은 성희롱이라고 쉽게 문제제기 하는 것일까? 현재 미투를 공론화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미투 제보자를 색출하고, 트위터 계정 삭제를 종용하며, 학생들의 입을 단속하고 있다. ‘양쪽 말을 들어봐야 된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야 한다’, ‘부모님을 부르겠다’는 식의 회유성 협박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미투 제보자는 예민하고, 자존감이 낮고, 학교에 적응을 못 하는 학생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씌우고 있다.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한 학생에 따르면 교사가 수업시간에 ‘이런 미투 운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심적으로 약하거나 자존감이 낮은 친구들이며, 사소한 행동을 오해한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미투를 제보하거나 지지한 학생들은 최근 사회적 낙인이 된 ‘메갈’로 찍히기도 한다. 일부 교사와 학생들은 ‘미투’의 의미를 전유하여 폄하와 조롱의 언어로 사용한다.


 ‘스쿨미투’는 교권을 추락시킬까? 일부 교사의 일탈행위가 전체 교사의 교육 활동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교사에 대한 불신을 키울까? 교권은 교사의 직무에 대한 권위이지 학생을 찍소리 못하게 하는 권력이 아니다. 교사가 학생과의 소통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앞에서 학생 탓을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교권’이 아니라 ‘권력’이다. 스쿨미투는 교사가 학생에 대해 가지는 ‘위력’의 문제이다. 스쿨미투는 우리 사회에서 더 약자인 ‘청소년’, ‘학생’의 말하기이기에 반격에 더 취약하다. 최근 어떤 학교 교사들이 미투 포스트잇을 떼어 오는 학생은 벌점을 깎아준다고 하여 포스트잇을 붙이려는 학생과 떼려는 학생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것이 교사가 학생에 가지는 위력이다. 교사는 위력을 이용해 학생 간의 갈등을 부추겼다. 정말 단지 ‘일부 교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편을 들지 말고 학생들의 편을 드는 것이 상식적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교권’이다.


 스쿨미투는 요즘 학생과 옛날 교사의 세대 차이 문제가 아니다. 세대 간의 문화가 달라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여성 혐오 문화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그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공식적인 문제 해결 루트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누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미투를 말하겠는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미투에 대해 취한 태도는 미투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이었지 키우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말하려는 학생들을 의심의 눈으로 먼저 보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교사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침묵과 방관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지금까지 맞다고 믿어왔던 것을 부정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교사라면 학생 탓은 하지 말자.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