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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는 헌 신발이 아니다 (정재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11
조회
320
정재호/ 청년 칼럼니스트

최근 상영되고 있는 영화 ‘카트’는 7년 전 이랜드의 계열사인 홈에버에서 일하던 2000명가량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부당해고를 당한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랜드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해고시킨 이유는 2007년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이었다. 법의 내용은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정직원으로 전환시켜 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으로 정규직이 많아지면 해고시키기도 어렵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한순간에 그 많은 사람들을 해고시켜버린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당장 수입원이 없어 자신과 부양가족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며 저항했다. 그럼에도 경찰을 등에 업은 기업의 갑질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막무가내였다. 홈에버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재의 비정규직 보호법은 지난 2007년 도입될 때부터 이미 대량 해고와 대량 실업의 위험성을 노출했다.

실제로 7년이 지난 2014년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20m 높이의 옥외전광판 위에는 2명의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C&M이 하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 109명이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해고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과 기업이 제시한 선별적 고용승계를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기업이 처음 계약 당시에 있었던 내용인 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에 대한 내용을 지키라고 말한 노조가 왜 해고를 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직도 비정규직에 대한 기업의 횡포는 달라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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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중인 전광판 뒤로 보이는 코리아나호텔에 비친 서울파이낸스센터.
한국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인 그곳 20층에 씨앤앰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사무실이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지난 7일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비정규직 경비노동자로 일하던 이만수 씨는 입주민들의 언어폭력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분신을 하였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은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비 용역업체를 교체함으로써 경비 노동자 106명을 한순간에 실업자로 만들어버렸다.

위에서 예로 들은 각각의 사례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홈에버의 사례에서는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기 위해서는 기업 인센티브 정책이나 대량해고 방지 대책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년이 지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기업에 대한 강제성은 결국 을의 입장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게 만들었다. C&M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해고의 사례에서는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계약 과정에서 기존의 비정규직 보호 규정이나 협약이 기업의 변심으로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비노동자의 사례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시키지 않더라도 하청업체 교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해고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차별대우와 사회양극화 현상을 줄이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그리고 노동위원회법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법들은 실질은 없고 허울뿐이었다. 기업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 후 2년이 되기 전에 파견이나 도급 등의 간접고용으로 바꾸거나 계약을 해지했다. 아니면 아예 비정규직 일자리를 감축시켰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느꼈을 때 기업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차별시정제도 마찬가지였다. 혹여나 해고되지는 않을까 상사의 말 한마디에 두말없이 야근에, 특근까지 하는 마당에 나 좀 제대로 대우해 달라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수 있겠는가.

또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기업에게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고용의 시간제한을 만들었다. 기업은 경영 조건 상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변경시켜 줄 수 없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법은 기업에게 2년이 지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쩔 수 없이 해고시킬 것을 강제했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기업과 2년 이상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없앴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수단을 잃는 것과 같다. 한 개인에게 생존권이 달린 만큼 기업도 노동자를 해고하는데 있어 심사숙고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여야 한다. 헌데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쉽게 직장에서 해고되고 차별받는다. 그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고자 만든 비정규직 보호법도 불완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법 내에서 각종 편법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쉽게 해고당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고 현장에서도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차별하지 못하도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위를 향상시켜야 한다. 이 사회에서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헌신짝 버리듯이 버림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재호씨는 법과 제도로 인권 보호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있는 법학과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