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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교수님 전상서 (신혜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59
조회
395
신혜연/ 청년 칼럼니스트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교수님께서 학내 미디어센터에 게재하신 칼럼인 ‘이 거지같은 청춘’의 독자층인 ‘청춘’이기도 하지요.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것도 그 칼럼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최근 글인 9월 25일자 ‘5포 청춘’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5포 청춘’이라는 낯선 제목 밑에는 “연애를 포기한 연포, 결혼을 포기한 결포, 출산을 포기한 출포, 주택을 포기한 주포, 인간관계를 포기한 인포 등을 일컫는 말”이라고 친절하게 각주도 달아놓으셨더군요. 교수님은 “(청년들은) 도대체 포기할 걸 포기해야지, 이런 걸 다 포기한다는 말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하셨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 이 다섯 가지는 인생살이에서 절대 포기돼서는 안 될 중요한 삶의 과정”이라며 “동물들의 일반적인 삶의 패턴조차 포기한다면 동물만도 못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일갈하셨죠.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청춘 스스로 치고 나가야 한다”는 교수님의 호통이 귀에 생생합니다.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독하게만 먹으면 돈 벌 곳도, 자기 짝도, 집도 있으니 결혼도 집 구매도 저지르라”는 충고도요.

글 밑에 달린 학생들의 댓글은 살벌합니다. 한 학생은 “꿈을 쫒다가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는 사회에서 ‘마음 독하게 먹고 저지르라’는 건가. 본인 자제들은 과연 그렇게 독하게 키웠는지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다른 학생은 더 과감합니다. “꿈 많고, 열정이 넘치는 청년들을 낙오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적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은 빼 놓으신 것 같다”며 교수님의 글을 “‘꼰대의 잔소리’일 뿐”이라고 평가했네요.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요즘 청년 세대의 삶은 삶이 아닙니다. 청년들은 감히 ‘저지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득이 중간쯤 되는 소득 5분위(전체 10분위)가 서울의 평균 수준 주택을 사는 데 75.8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에 취직하면, 딱 100살에 집을 살 수 있네요.

흔히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가난해도 주거 약자로 생각하지 않죠. 하지만 그냥 참고 지내기에 청년들의 상황은 너무 열악합니다.


청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에 둥지를 틀죠. 목돈이 없으니,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에 삽니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20~35세 청년의 주거빈곤율은 23.6%로, 전체 주거빈곤율(13.6%)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약 28만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최저 생계 기준인 3.6평도 안되는 공간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상을 서울 1인 청년가구로 좁히면 주거빈곤율은 36.3%까지 치솟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서울 고시원의 평당 임대료는 타워팰리스보다 비쌉니다. 기가 막히죠. ‘방값 역전 현상’이라고 한답니다. 단지 수요가 높다는 이유로, 청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매년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뜁니다. 청년들은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청년들의 집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근 연합기숙사 설립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이런 세대갈등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한쪽에서는 청년들이 20%도 안 되는 기숙사 수용률에 반발하며 연합기숙사 설립을 촉구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모세대들이 연일 피켓을 들고 나와 집값 하락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대학생 기숙사가 생기면 술과 연애를 즐기는 청춘들로 인해 동네가 소란스러워 진다는 겁니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갈 곳 없는 청년들에게 “너희도 고향에 땅 가진 부모 입장을 생각해보라”고 을러대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장년세대에게 집값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은퇴자가 가진 자산의 80%가 부동산이라죠. 집이 거의 유일한 노후 대책인데, 집값이 폭락하면 안되겠죠.

하지만 장년 세대의 노후 대책은 복지 제도 확충으로 해결할 일이지 청년 세대의 살 권리를 박탈한 채 집값부양 정책으로 해결할 일은 아닙니다.

지난 6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주거의 날’이었습니다. 주거권이 인간의 기본권임을 알리고자 1986년부터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마다 기념해온 날입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35조)”는 법전 속 문구를 들여다봅니다. 주거권은 인간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교수님의 충고대로 집을 ‘사버리려고’ 합니다. 청년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은 ‘민달팽이 협동조합’을 설립해 직접 청년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돈 없는 청년들이 한푼 두푼 뜻을 모은 우호 자금으로 몇몇 청년들은 안정적이고 깨끗한 집을 저렴하게 공급받게 됐습니다. 집값에 저당 잡힌 삶을 사는 청년들에게 ‘살아가는 곳’으로서의 집을 보여주고자 하는 ‘민달팽이’ 청년들의 실험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것입니다.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이 미약한 시도가 바로 주거 인권을 되찾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집 한 두 채로 많은 게 변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권지웅 대표의 말처럼 “더 큰 변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신혜연씨는 노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