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우리시대

‘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녀’들의 눈물을 기억하라 (송현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16
조회
348

송현주/ 청년 칼럼니스트



작년 1월쯤이었던가? 지인의 권유로 난생 처음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것을 했다. 후원 대상은 어떤 영화였다.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라는 소재에, 적은 금액이나마 선뜻 후원에 임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도움과 지지로 시작했던 그 영화가 2014년 가을 끝물에 드디어 개봉했다. 영화의 제목은 <카트>. 약 100여 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동안 만감이 교차하며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았다. 결코 남들의 얘기가 아니었다. 나의 어머니 역시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트에서 일하는 중년 아주머니들이다. ‘아줌마의 힘’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들이지만, 정작 마트에서 일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수시로 잔업이나 연장근무에 시달리나 수당 받기란 언감생심, 임금은 계약직이란 이유로 턱없이 낮고, 탈의실 겸 휴식 공간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나이가 어린 정규직의 잔소리나 명령이 고까워도 토 달지 못하고, ‘손님이 왕이다’를 권력처럼 여기는 뭇사람들의 진상 짓에도 하릴없이 자존심을 구겨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집에 있는 가족들과 생계를 위해, 고단함을 무릅쓰며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연신 외치는 것이다. 아주머니들, 아니 누군가의 어머니들이 말이다.

억척스러움 속에서도 웃음을 찾으며 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회사는 해고 통보를 한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측에, 노동조합의 ‘노’자도 몰랐던 아주머니들이 조합을 만든다. 대놓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사측의 반응에, 아주머니들은 마트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한다. 살갑고 인심 좋던 평범한 아주머니들이 날선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상이 불온해서, 혹은 운동권이어서가 아니었다. 100만 원 돈도 안 되는 고단한 일일지언정, 그 일이 그녀들에게는 생계의 문제이고 그만큼 절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극 중 ‘더 마트’의 계산대 노동자였던 주인공 ‘선희’(염정아 분)는 회사의 무책임한 반응에 이렇게 일갈했다. “반찬값 벌려고 나온 게 아니라 우리도 생활비 벌려고 나와요.”

영화 <카트>의 풍경은 유난히 생생하고 낯설지 않다. 실제로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기 때문이다. 홈에버를 운영하는 이랜드 그룹은 재정부담을 이유로, 돌연 천 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의도한 우연인지 그들의 대량해고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시행을 앞둔 시점이었다. 마트 노동자들은 부당해고에 반대하며 마트 점거·농성에 들어갔지만, 그들의 싸움은 혹독했고 외로웠다. 결국 사건은 노조 간부들이 퇴사하는 조건으로 일부 해고자들만 복직되는 반쪽짜리 결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전혀 일단락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마트 직원들이 간접고용으로 저임금에 시달리고 고용불안에 떤다. 그런 맥락은 한국사회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여성 비정규직 노동의 실태와 동떨어 있지 않다.


11_44_25__543f31097c56f[S614,410-].jpg
사진 출처 - 씨네21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것은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4년 10월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607만 7,000명,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은 32.4%에 이른다. 바야흐로 ‘비정규직 600만 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사실 문제는 ‘수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다. 비정규직이 벌어들이는 임금은 145만 3,000원에 불과하다. 참고로 임금 근로자 월 평균 임금은 223만 1,000원, 정규직 임금은 260만 4,000원이다. 임금만 무려 1.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정식 임금 외에 퇴직금이나 시간 외 수당 등 복리후생과 고용보장 측면에서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은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여성 비정규직 노동은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2014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 임금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57.5%다. 남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인 37.2%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약 113만 원 정도로 매우 낮고, 그나마도 여성 비정규직의 28.5%는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일련의 수치들이 말하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일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유입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과 복리후생, 고용보장 전반에서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비정규직 행은 과연 자발적인 선택일까? 혹시 ‘경단녀’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결혼이나 출산·육아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서 경력이 단절된 여자’라는 의미의 신조어다.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의 여건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여성 인력들이 ‘경단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바늘구멍을 뚫고 취직을 했지만, 출산·육아휴직의 부담으로 회사는 여성 사원에게 사직 압박을 가하기 일쑤다. 행여나 정리해고 조치가 나오면, 해고 1순위는 계약직 기혼여성 혹은 결혼을 앞둔 계약직 미혼여성에게 돌아간다. 기껏해야 정규직 여성은 차 순위로 밀릴 뿐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단녀’들이 양산된다. 기가 막힌 것은 은행 빚과 자녀 양육비로 허덕이는 가계부 때문에 돈은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력이 단절된 기혼 여성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마트일, 식당일, 판촉일, 보험일, 청소일, 간병일, 가사도우미일 등과 같은 저임금 비정규직에 한정될 뿐이다. 동시에 위의 일자리들은 간접고용이라는 덫에서 자유롭지 못해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커녕 고용조차 불안한 실정이다.

소외될 대로 소외된 여성 비정규직 노동, 하지만 현행법의 대응은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은, ‘보호’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데에 악용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법을 교묘히 비껴가는 파견근로, 즉 간접고용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통제의 어려움으로 불법파견이 성행하는 것은 물론이요, 재계약을 빌미로 ‘갑’의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의 대부분이 재생산노동, 감정노동이라는 이유로 간접고용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현행 ‘비정규직 보호법’은 여러모로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현행법의 허점에 대해서는 지난 7년간 수도 없이 회자되어왔다. 그러나 경제 부총리라는 사람이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규직의 해고가 유연해야 한다는 식의 망언이나 일삼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법률도 국민의 대표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막다른 곳에 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구책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필요시 파업을 감행하는 것뿐이다. 그들의 절박한 외침과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뭇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그 대상들이 ‘여성’일 때 아니꼬운 시선과 지탄은 더욱 심해진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KTX 승무원 투쟁, 홈에버 투쟁,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투쟁,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 등이 발생했던 당시의 여론과 주변의 반응을 새삼 떠올려 본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재생산노동과 감정노동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그에 걸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 시장과 사회에서 소외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꼭 짚고 싶은 부분은 결코 그녀들이 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가장이자 어머니, 할머니일 수도 있다. 혹은 사랑하는 아내이거나, 애지중지하는 딸일 수도 있다. 당신의 ‘그녀’들이 그렇지 않듯이, 비정규직이 된다는 건 게으르거나 무식해서가 아니다. 누구나 불시에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 여성 비정규직 문제,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새기며, 그들의 눈물을 기억하자.

송현주씨는 정치와 경제, 복지에 관심이 있는 정치외교학과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