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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삶도 가치 있다(이현종)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2-09 11:29
조회
110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오후 5시쯤 지하철에 탔다. 시간대도 그렇고, 2호선은 사람이 붐비는 노선이기도 해서,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숨 쉴 구멍 정도는 있었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1호선 환승을 하려고 내릴 때 ‘그 광경’을 보았다. 바로 옆 칸에서 싸움이 났는지, 누군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자세히 보니 휠체어 때문이었다. 사실상 만선인 지하철에 휠체어 탄 장애인이 들어가려 하니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장애인에게 자리가 없으니 다음 차를 타라거나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욕을 하고 있었다.


그 장애인은 ‘이미 40분 동안 몇 대나 양보해서 보냈다, 이제는 타겠다’고 했다. 휠체어 전용 석도 마련된 지하철에 왜 자신이 타서는 안 되느냐는 거였다. 그는 전동 휠체어를 억지로 밀어 넣었고, 결국 객차 안 다른 사람의 발을 휠체어 바퀴가 뭉갰다. 발을 다친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휠체어를 발로 찼다. 발길질에 뒤로 밀려난 휠체어가 전철 출입문에 걸린 탓에 출발이 지연되고서야 사람들은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장애인은 겨우 전철을 탈 수 있었다.


그 광경을 5분 가까이 지켜보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왜,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들은 지하철 이용에 제약을 받는 걸까,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 서비스이고 전용석도 있는 전철에 왜 그들은 탈 수 없을까, 이런 난리가 벌어지는데 역사 직원은 왜 안 보이는 걸까, 저 사람은 어떤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된 걸까. 이런 질문들 끝에 나를 불쾌하게 하는 앙금으로 남은 것은 ‘이동 방해 요소’인 그 장애인을 향한 사람들의 폭언과 경멸의 언사, 그리고 행동들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40분 넘게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는, 제발 좀 같이 타자는 울먹거림 앞에서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다 같이 뒤로 좀 물러서서 공간을 만들자고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휠체어를 향해 욕을 하고, 알 바 아니라고 소리 지르거나 다음 차를 타라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심지어 ‘몸이 그러면 택시를 타던가, 밖에 나오지 말아야지 뭐하러 나와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냐’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 장애인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했을 뿐이었다. 단지 그런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욕을 듣고, ‘민폐’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장애인의 나이라든가, 장애를 안고 살게 된 사연이라든가, 저 사람이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이며 왜 가야하기에 저렇게 절실할까라든가 하는 것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무서워졌다. 운수가 지독히 나쁜 어느 날 내가 큰 사고를 겪는다는 상상을 하니 그랬다. 조금 전 보게 된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저 사람이 겪은 잔인한 대우를 나라고 겪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휠체어에 앉은 그가 나였다.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쓸모를 증명할 기회를 잃은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고 인권이 있다. 아니,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가치와 인권이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과 함께할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이현종 회원은 금형분야에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