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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5:14
조회
339

 서약이란 게 맹세도 하고 거기에 약속까지 더한다는 말이니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건 지키겠다는 뜻이겠다.


 어느 단체의 모임에 가거나 길거리라도 지나치다보면 내 이름석자 적어 넣을 용지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나는 비교적 자발적으로 서명에 참여하는 축에 속한다.

굳이 부연하지 않더라도 생명, 평화, 나눔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일렬횡대로 정돈되어있는 사고구조를 가진 세대라 이 비슷한 주제를 가진 서명운동이라면 내 이름을 일부러 뺀 적은 없다.

별것도 아닌 이름과 주소가 무슨 힘이 될까마는 사람 없는 집회에 머릿수라도 채우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심정으로 쓴다.

도룡뇽 살리자는 데도 썼고 새만금, 장항 갯벌 살리자는 데도 썼다. 구속 노동자 석방하자는 데도 쓰고 국가보안법 폐지하자는 데도 쓴다.

나는 살리는 게 좋다. 다 살리자는 서명용지에만 내 이름을 썼다. 딱히 내가 가진 게 없으니 더 가질 것도 없고 세상에 큰 이익이라는 게 뵈질 않으니 눈 부라려 싸울 일도 별로 없다. 그러니 실천이 어려워서 서명을 못할 이유도 없다. 딱 하나 맘에 걸리는 게 “빈 그릇 운동”, 그거 서명해놓고는 거의 실천 못하고 있다.

 

 

070711web07.jpgFTA 반대 서명운동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십 수 년 전 나는 결혼 서약을 했다.

“나는 그대의 또 하나의 몸 그대는 나의 또 다른 영혼”이라는 사랑의 거대한 약속을 마음으로 확인하는 일이므로 가끔 만나는 서명용지의 날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다.

서약을 하면서 가슴 한구석엔 묵직한 책임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일종의 환희와 같은 것 이었다.

덕분에 나는 궁할 때 소리 없이 지갑을 채워주는 후원자를 얻었고 매일같이 세상 잔일까지

얘기 할 수 있는 술친구를 얻었고 배고플 때 맛난 밥상을 올려주는 요리사도 얻었다.

또 가끔씩 착한 일 했다고 선물 사달라는 딸아이의 투정도 들을 수 있으니, 지금까지 수천 번의 약속을 했으나 그중 가장 잘한 약속이 결혼서약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머리에 담는 게 마음에 품는 이만 못하고 마음에 품는 게 발 가는 이만 못하다. 서명은 마음으로 품는 일이지만 서약은 발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게 있다. 1911년 조선 교육령에 의해 예비 황국신민들을 훈육했던 “교육칙어”의 정신은 1968년 “국민교육헌장”의 등장으로 새 빛을 발한다.

그 정도의 충성도 모자라는지, 어떤 놈이 또 말을 안 들었는지 우리의 나랏님들께서는 국기에 대해서까지 몸과 마음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급회의라는 게 생기고 나서부터 이후 내리 8년을 쉬지 않고 반공부장만 맡았었던 나는 매일 오후 5시면 울리는 국기 강하식 음악에 가던 길 멈추고 가슴에 손을 올렸고 나처럼 하지 않는 어른들에게는 국기를 존중하라고 따지고 들었었다. 물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잘 외우자는 실천사항은 삐라를 잘 줍자는 말과 함께 나의 학급회의 단골 메뉴였고.

 

“이날은 대성전기념일도 축제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받은 깃대에 국기를 한번 꽂아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땀까지 흘려가며 벽장 속에서 국기를 꺼내어 그 깃대에 매었다. 탄탄한 깃대에 비해서는 벌써 장만한지 해가 겹친 국기의 깃폭은 낡아 보였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뒷집에서 깃대를 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나는 거기에 맞추어야 할 새로운 깃폭을 준비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던 것인가. 나는 깃대에 꽂힌 국기를 방 아랫목에 세워두고 한참동안 합장을 하고 있었다.”

- 일장기 앞에서 전문 - 미당 서정주.


 
따지고 보면 나는 경건한 서약을 매일같이 했던 것인데, 문장은 아니로되 국기에 대한 정성만큼은 서정주 시인의 일장기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시를 그때 알았더라면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어서 암송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가가 개인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참 난감하고 불경스런 질문을 나는 아직도 달고 다닌다. 군대 가서 나라 밥, 나라 옷 입고 각종 작업 기술 익혔으니, 의무교육으로 보낸 학교에서 나의 딸아이는 열심히 경쟁을 배우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노동의 권리는 없는 나라에서 그나마 의무라도 있으니, 버는 만큼 쓰는 만큼 내는 세금의 혜택은 없어도 늙으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에 감사해야하나.

가장 최근에 나의 의지로 서명한 것이 한미 FTA반대였다. 그전에 비정규직 보호법 반대였고 사립학교법 재개정 반대였다. 불행하게도 국가는 나의 의지를 모두 다 꺾어 버렸다.

아직도 국가는 내게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보다 내가 국가에 무엇을 바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바쳤는데 뭘 또 바치라고.

국기에 대한 맹세 문구가 바뀐단다. 내용을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국가는 나에게 서민경제 활성화도 약속했었고 비정규직 보호, 고용시장의 안정, 일자리 창출. 별거 별거 다 약속 했었다. 또 2년 전 국가는 자국민인 교토 우토로 마을의 할머니들에게 국가예산으로 부지매입을 돕겠다고도 약속했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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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11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없애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002년 월드컵 경기장에서 내 마음은 무척 뜨거웠다.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붉은악마 응원석으로 대형태극기가 펼쳐질 땐 저절로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외쳐 불렀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 축구팀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지나보니 나의 생활과 아무 상관없는 그 기억이 국가가 나에게 준 최대의 선물이었다.

약속은 상대적인 것이다.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맹세할 국민은 없다. 무엇하나 나올 것 없는 국가에 대해 서약과 같은 맹세를 요구하는 일이라면 국가는 국민의 의식위에 군림하는 신이어야 한다.

나는 그런 신을 섬길 이유가 없다. 고작 문구 몇 개 바꾼 “국기에 대한 맹세” 따위로 국민에게 거짓 충성을 강요할 순 없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