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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사람들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23:06
조회
323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저는 영혼이 없습니다.”

근래 들어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 간간이 들리던 이런 소리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귓속은 물론 마음마저 심란하게 만든다. 대체로 공직에 있는, 특히나 검찰, 경찰, 국정원 등 힘깨나 쓰거나 목소리가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 하나같이 자주 쓴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그 권력을 자신의 양심이나 원칙에 따라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맡긴’ 누군가를 위해, 그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쓸 따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의 말투에서는 하나같이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 언뜻언뜻 비친다. 분명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책임질 게 없다니…. 그래서 더욱 짜증스럽다.

이른바 공복(公僕)이라 불리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그 자리를 부여하고 권력을 준 이는 다름 아닌 평범한 시민인 다수 대중인데 그들이 말하는 ‘누구’에서는 ‘주인’이 철저히 배재돼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 스스로도 인식하거니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영혼이 없다’니, 그런 이들을 세운 사람도 아마 ‘영혼’이 없든지 아니면 잠자고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러한 모습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지다 보니 이른바 ‘높은 분’들을 모시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도 “영혼이 없다”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아니, 이제는 대놓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형국이다.





090729web02.jpg한나라당이 지난 22일 전례없는 재표결에 대리투표 논란까지 일으키며 미디어법을 강행처리
하자 야당의원들이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신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몸소 당신의 숨까지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는데 그 사람들이 영혼이 없다고 스스로 떠들어대니…. 그런 말을 무슨 ‘위세’인 양 해대는 높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것도 잘 나가는 모 교회 장로나 집사 등으로 훌륭한 신앙인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불경죄’를 뛰어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Language is the house of Being)’고 했다. 말 속에 그 시대와 현실 삶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말은 그가 어디에 앉아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누가 우리 사회에 숱한 영혼이 없다는 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염치없고 분별력 없는 권력의 아집과 편견이 영혼 없는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로 출신의 최고 위정자마저 국민적 합의보다는 굴종하는 모습을 바라기 때문에 영혼 없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지만 고귀함을 간직한 영혼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없다고 말하기에 앞서 한 번이라도 자신이 지녔던 영혼의 시원을 돌아본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지는 못할 것이다.

영혼이 있는 이들을 보고 싶다. 하느님이 불어넣어 주신 숨이 다하기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 향기로운 영혼을 지닌 이들을 만나고 싶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