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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밥그릇 투쟁(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4-26 09:52
조회
379

이재성 / 인권연대 운영위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유명한 대사는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 역할을 맡은 배우 류승범이 경찰에 대해 뱉은 말이지만, 2023년의 현실에서 이 대사가 향해야 할 곳은 검찰 자신이다.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과 형집행권을 비롯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적 권한을 한 손에 쥐게 해준 국민의 호의가 반세기 이상 계속되자 그것이 마치 자기들의 천부적 권리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착각은 신념이 되어 검찰 자신을 속이고 국민도 속이고 있다.


 


출처 - 월간중앙


 

윤석열과 한동훈의 행태 가운데 분노의 버튼을 가장 세게 누르는 지점은 헌법과 삼권분립조차 무시하는 초법적 발언과 행동들이다. 입만 열면 법치를 외치는 자들이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무시하는 초현실적 풍경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한동훈은 민주당 ‘검찰 수사권 축소법’의 정당성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소수의견이 4명이나 있었다며 대놓고 무시했다. 자신을 헌법 위의 존재라고 여기는 한동훈의 행태도 놀랍지만, 언론의 무덤덤한 반응은 더욱 놀랍다.



호의가 계속되니 무법천지도 계속된다. 헌재의 판단에 승복하고 사과하라는 야당 의원들의 요구에 한동훈은 “왜 (검찰이) 깡패·마약·무고·위증 수사를 못 하게 되돌려야 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며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 시행령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시행령으로 법을 뒤집는 위헌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기저기서 마약 사건이 터지자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만든다고 한다. 대검찰청에는 옛 마약·조직범죄부(마조부)를 부활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지면


 

윤석열 정부의 호위무사인 <조선일보>는 ‘검찰 손발 묶인 사이 마약이 거리로 풀려났다’는 기사를 1면 톱으로 보도하며 응원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마약 수사 기능이 약해져 마약이 판치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이 기사의 거짓이 드러난다. <연합뉴스>는 4월 14일 ‘작년 마약사범 역대 최다…전담 경찰은 1년 새 고작 4명↑’ 기사에서 지난해 마약사범 검거가 역대 최다였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주장대로라면 검찰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도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경찰이 열심히 일한 덕에 역사상 가장 많은 마약사범을 잡아들인 것이다. 오직 검찰만이 (마약)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든 절대주의가 그러하듯 간계와 허위를 품고 있다. 마약이 대중화된 것은 경제 발전과 해외 교류 증가 등 시대 변화 탓이지 검찰이 수사를 못(안)해서가 아니다. 한국 정도의 경제력에 한국만큼 마약이 드문 나라도 없다. 조선일보는 늘 이런 식이다. 팩트를 주장에 끼워 맞춰 그럴듯하게 선동한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부터 마약 범죄 단속을 강조했다. 검찰 수사권 축소의 폐해를 가장 극적으로 부각할 수 있는 호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원인 중 하나가 교통 안내를 비롯한 경찰의 질서 유지 기능이 마비된 것이었는데, 마약 단속하느라 바빠서였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바 있다.



한동훈이 왜 이렇게 마약 수사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는 최근의 에피소드가 있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이 대검 마약과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다. 지난해 5월 대검 차장을 끝으로 검찰을 나온 박성진 변호사라는 사람인데, 마약과 프로포폴 수사로 다수의 연예인을 잡아넣은 자타공인 마약통이다. 유아인으로선 ‘따끈따끈한’ 검찰 전관을 선임한 셈이다. 유아인은 이밖에도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를 여럿 선임했다고 한다.



출처 - 예스미디어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하는 변호사가 아니다. 유아인처럼 돈 많은 사람들은 법정용 변호사(주로 판사 출신)를 따로 산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사 후배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데, 의뢰인의 구속을 면하게 하거나 혐의를 조정하고 형량을 줄여주는 대가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다. 검찰에 수사권이 없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비즈니스다. 한동훈과 검찰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수사권을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전관예우라는 우아한 네이밍에 숨겨진 실체는 법을 돈으로 사는 추악한 거래와 검사들의 인맥으로 정의를 짓밟는 반민주적 시스템이다.



박성진 변호사는 검찰 퇴직 전 검찰 수사권 축소법에 항의하여 두 차례나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 내에서 친문 검사라고 비난받았던 김오수와 이성윤도 마찬가지로 항의성 사표를 냈다. 밥그릇 지키기에는 친문 반문이 따로 없었다. 친문 반문보다 중요한 건 퇴직 후 밥벌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피보다 진한 건 돈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 부당한 호의가 계속될 것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