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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범인도피죄(서보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3-25 09:52
조회
247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총선을 앞둔 요즘 범인도피로 나라가 몹시 시끄럽다.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범인도피죄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람을 은닉ㆍ도피하게 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범인 스스로가 도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처벌되지 않는다(다만 범인이 체포ㆍ구속된 이후에 도주하는 경우에는 도주죄로 처벌된다). 즉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은닉ㆍ도피케 하는 제3자가 처벌되는 죄이다. 은닉은 흔히 숨겨주는 행위를 말하고 도피하게 하는 행위는 도피자금이나 은신처를 제공하는 행위, 수사상황 등 도피에 용이한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수사기관의 추적에 혼선을 야기하는 행위 등 범인의 발견ㆍ체포를 곤란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가끔 뉴스에서 접하는,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을 때 동승자가 자신이 운전했다고 나서면서 소위 ‘운전자 바꿔치기’를 하는 경우도 범인도피죄에 해당한다. 범인도피죄는 국가의 형사사법작용을 곤란ㆍ불가능하게 하는 범죄로서 그 죄책이 가볍지 않은 범죄이다. 범인도피와 관련된 사례 세 개를 살펴본다.


#사례1.


지난 2019년 3월 22일 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김포공항에서 태국으로 출국을 시도하다가 법무부의 긴급출금조치에 막혀 출국이 좌절되었다. 고검장급 고위 검사였던 김학의는 건설업자 윤중천에게 뇌물을 받고 윤의 별장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피의자였다. 당시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이 김학의의 개인정보를 중점관리대상 등록시스템에 입력해 출국 동향을 감시하도록 지시하였고 그의 출국 시도를 알아챈 뒤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근무하던 이규원 검사에게 정보를 전달하였다. 이에 이 검사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작성하여 김학의의 해외도피를 막았다.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의 발 빠른 협력과 조치가 파렴치한 중범죄자의 기습적인 해외도피를 막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윤석열의 지휘하에 있던 검찰(윤석열은 2017.05-2019.07까지 서울지검장, 2019.07-2021.03까지 검찰총장이었다)은 도피를 시도한 김학의를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대신 오히려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검사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허위로 작성하였고 차 본부장은 이 검사의 위법행위를 알면서도 동조하여 불법적인 방법으로 김 전 차관의 출국을 금지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2021년 4월 기소하였다. 당시 검찰이 같은 식구인 김학의에 대한 수사를 미온적으로 하고 있던 상황에서 도주 시도가 있었고 이 검사와 차 본부장 두 사람의 빠른 대처로 해외도피가 저지되었다면 이는 오히려 상을 주었어야 할 행위였다. 돌발 상황에서 긴급하게 취한 조치에 절차상 일부 하자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정당한 목적과 공익 달성을 위한 정당한 법집행으로 평가되었어야 할 행위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오히려 중범죄자의 해외도피를 막은 두 사람을 수사하여 법정에 세웠다. 범인도피를 막은 법집행공무원을 탄압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검사가 범인인데 감히 도피를 막다니! 검사가 범인일 때에는 도피를 모른 체 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가당키나 한 사건처리인가.


#사례2.


"이종섭 대사 국내 비리조사에도 불구하고 호주로 출국" 호주 abc 뉴스 보도


2024년 3월 10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호주대사로 부임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종섭은 2023년 수해지역 실종자 수색작전에 투입되었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채수근 상병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되어 있는 피의자이다. 이 전 장관은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의 주범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의 외압을 밝혀줄 핵심 연결고리인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중범죄자를 호주 대사로 임명하여 법무부의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시킨 뒤 해외로 보내버렸다. 해병대 수사단의 1차 수사결과와 처리방침을 결재하였던 국방장관의 결정을 하루 만에 뒤집을 수 있는 외압은 상식적으로 대통령실 외에서는 나올 수 없다. 이종섭이 본인의 결정을 뒤집기 전 대통령실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이 통화기록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의 입에서 외압을 시인하는 진술이 튀어나올까 두려워 급히 호주로 보내 버린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국내ㆍ외에서 이종섭은 부패에 연루되어 해외로 도망간 ‘도주대사’로 비아냥을 사고 있다. 대통령이 외압을 행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연결고리에 있는 핵심 피의자를 외국으로 보냈다면 비록 대사 임명이란 형식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범인도피죄가 성립한다. 총선을 앞두고 국내 여론이 들끓자 이 대사는 도피출국 의혹을 희석시키기 위해 3월 21일 회의참석을 빌미로 귀국하였고 공수처의 소환이 있으면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급거 귀국 쇼를 벌이더라도 이미 윤 대통령에게 성립한 범인도피죄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공수처는 즉각 법무부에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를 다시 요청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앞의 #사례1에서 윤석열과 그의 영향력 하에 있던 검찰은 도피를 시도한 중범죄자를 엄정하게 수사하는 대신 오히려 중범죄자의 해외도피를 막은 사람들을 기소함으로써 핍박하였다. 윤석열 검찰이 범인도피를 옹호한 본말이 전도된 사건처리였다. 2023년 2월 1심 형사재판에서 차 본부장은 무죄, 이 검사는 선고유예를 선고받았다. #사례2에서 윤 대통령은 한 단계 진화하여 직접 범인도피죄를 범하였다. 대사 임명의 형식을 빈 중범죄자 빼돌리기이다.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이런 식의 범인도피죄를 범하다니! 가히 상상을 초월한 신박한 범인도피와 수사방해에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평소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국정철학으로 내 세워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치주의 수호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말이 아닌 그의 행동에서는 도무지 공정ㆍ상식과 법치주의 수호의지를 찾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검사 시절 자신이 수사ㆍ기소하여 형사처벌하였던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절의 수많은 국정농단 및 부패사범들을 대거 사면ㆍ복권 시켰다. 심지어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이번 총선에 나설 수 있도록 급하게 은전을 베풀었다. 명백한 사면권 남용이다. 그리고 평생 검사의 길을 걸어 온 자신의 과거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다. 그런 와중에 벌어진 이번 범인도피행위는 윤 대통령의 민낯을 드러낸 결정적인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입으로는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지만 본질은 선택적 공정론자ㆍ비상식론자ㆍ사이비 법치주의자ㆍ법치주의 파괴자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윤 정부를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한다는 염원이 간절하다.


이번 사건은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채 상병 사건의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특검법안이 지난 2023년 10월 6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고 총선이 끝난 4월 4일 본회의에 자동 상정될 예정이다. 야당은 총선 이후 열리는 국회 첫 본회의에서 특검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총선 이후에는 여당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도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특검법안의 실시는 확실한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며칠 전 민주당은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및 이종섭 전 장관의 도피성 출국과 관련한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특검법안도 이미 발의한 상태이다. 특검에서 대통령의 수사외압 및 범인도피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곧바로 탄핵으로 연결될 것이고 퇴임 후 형사처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사례3. 


앞의 사건들과는 달리 미담에 가까운 범인도피 사례를 소개한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이부영 전 기자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당시 1세대 인권변호사였던 고영구 변호사의 집에 한동안 피신해 있었다. 후에 경찰에 검거된 뒤 도피처를 제공한 사람에 대한 색출이 시작되었다. 이에 원래는 고영구 변호사가 범인도피죄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같은 1세대 인권변호사였던 이돈명 변호사가 대신 허위자백을 하고 범인도피죄로 처벌을 받았다. 당시 고영구 변호사가 80대 노모를 모시고 있었고 부인에게 병이 있어서 고 변호사가 구속될 경우 그 가족들이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 변호사가 대신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었다. 이돈명 변호사는 구속되어 실형을 살게 되었고 밖에 있는 고영구 변호사는 이 변호사의 수감기간 죄송한 마음에 겨울에도 냉방에서 지냈다고 한다(김정남 회고록 <내가 겪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중). 발각될 경우 형사처벌의 위험이 있음에도 민주화 운동을 하던 수배자를 집에 피신 시켜준 고영구 변호사와 그 가족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 대신 형사처벌을 감수한 이돈명 변호사 모두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비록 범인도피죄를 범하였지만 누가 감히 이들에게 사법질서를 어지럽히고 법치주의를 파괴하였다는 비난의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이 자신의 중대범죄를 감추기 위해 저지른 범인도피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당한 범인도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법치주의자들이 보여준 용기와 따뜻한 정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