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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공수처를 어찌할 것인가(서보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2-07 12:28
조회
96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지난 1월 20일 김진욱 초대공수처장이 퇴임하면서 1기 공수처가 막을 내렸다. 공수처는 대통령,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등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여 국가운영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한국 사회 최대 권력기관인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기관이기도 하다. 공수처는 1996년 1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15대 국회에 제출한 입법청원을 통해 최초로 공론화되었고 이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등 진보정권에서 도입을 위한 노력을 지속 경주해 왔으며 마침내 2019년 12월 30일 20대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본회를 통과하였고 2020년 1월 7일 국무회를 통해 공표되었다. 공수처 설립은 시민사회와 진보세력이 25년간 보수세력 및 검찰의 집요한 반대를 극복하고 거둔 성과이기 때문에 3년 전 공수처 출범 시 시민들의 기대감이 높았다. 정치권의 요구에 맞춰 고위공직자 범죄를 편파·왜곡 수사하거나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검찰과는 달리 공수처는 공정한 잣대로 권력형 비리를 엄정 수사할 것과 또한 특권 남용·내부 비리로 깊숙이 병든 검찰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공수처의 지난 3년은 실망스러웠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1호 수사사건의 선정부터 납득하기 어려웠다. 중대한 권력형 범죄나 검사비리를 선정하여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공수처는 자신들이 기소할 수도 없는 사건인 서울시교육감 해직교사 부당채용사건을 1호 수사사건으로 선정하였다. 공수처의 역할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를 무시한 사건선정이었다. 지난 3년간 1기 공수처는 겨우 3건을 기소하였는데 이 중 2건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5건의 구속영장 신청은 모두 기각되었다. 초라한 성적표를 거둔 것이다. 때문에 언론은 공수처가 빈손인 ‘空手處’로 전락했다는 혹평을 내놓았고 폐지론을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권력형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고 검찰의 권력 남용·부패를 견제하여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공수처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식물기구로 전락한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며 공수처 도입 운동에 적극 참여했었던 필자의 실망감도 말할 수 없이 크다.


1기 공수처가 실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우선 규모가 너무 작다. 공수처는 검사 25명과 수사관 4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검찰의 1개 지청 규모에 불과하다. 공수처가 대규모 수사인력에 의한 치밀한 수사가 필요한 권력형 범죄들을 수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너무 적은 인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수처 검사·수사관의 임기 및 연임이 제한되어 신분이 불안정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신분이 불안한 처지에서 거대권력인 정치권·검찰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수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수처의 기소권이 판사·검사·고위경찰관 비리로 제한된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그 외 다른 모든 범죄는 공수처가 수사를 마치면 검찰로 송치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기득권 검찰에 의한 견제와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최근 1월 30일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대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서 주모자인 손준성 검사는 공수처에 의해 직접 기소되었지만 공범관계에 있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공수처 수사 당시 김웅 의원은 전 검사이자 국회의원 후보 신분이었다)은 검찰로 송치된 뒤 무혐의 불기소처분되었다. 이는 공수처 수사에 대한 검찰의 견제·방해가 노골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공수처가 무기력증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공수처 구성원들의 의식·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초대 공수처장 및 공수처 검사들에게 고위직 범죄를 일소하여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소명의식과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독립적 수사기구로서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결기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히 무난한 성품의 인물, 다시 말해 소신과 결기가 부족했던 인물을 초대처장으로 임명한 것이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공수처는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아직은 공수처에게 존재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법원은 ‘대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주모자인 손준성 검사에게 "공직자로서의 정치적 중립을 어기고 검찰권을 남용했다"고 질타하면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만약 이 사건을 검찰의 손에 맡겼다면 기소는 커녕 수사조차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공수처가 수사하고 직접 기소한 결과 검찰권한을 야당인사 죽이기에 활용하려 했던 사건의 일부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공수처가 왜 필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다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던 손준성 검사의 배후에 대한 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수처 수사의 한계도 명확하다). 현재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서도 공수처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도 외압의 꼬리를 따라가다 보면 국방부를 거쳐 대통령실까지 이를 수 있기에 검찰에 맡겨서는 실체적 진실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벌써 공수처의 존폐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2기 공수처의 앞날도 밝지 않다는 데 있다. 윤석열 검찰정권이 눈엣가시 같은 공수처를 어떻게 다룰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정부·여당은 친윤인사를 2기 공수처장으로 집요하게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기 공수처장으로 유력시되고 있는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과거 판사 시절부터 공수처를 '통제 불가능한 괴물' '형사사법 절차 안의 이질분자'라고 비난했던 인물이다. 공수처가 탄생되어서는 안 될 기관이라고 목소리 높였던 자가 차기 공수처장으로 유력시되는 현실은 가히 코미디급이다. 만약 이 사람이 차기 처장에 임명된다면 향후 3년간 공수처는 완전한 식물기구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검찰과 더불어 야당·진보시민세력을 찌르는 제2의 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비전문가·무소신파 현병철 인권위원장에 의해 독립기구였던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성을 상실하고 인권보호·구제에서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식물기구로 전락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윤석열 정권하의 국가인권위원회도 보수적인 상임위원 2인으로 인해 이미 그 기능이 상당 부분 마비되어 가는 중이다. 앞으로 2기 공수처도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다. 어째 보수정권하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정상이 비정상으로 대체되는 역사 퇴행이 반복되는지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향후 공수처를 어찌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급속하게 정부·여당에 종속되어 ‘정권의 돌격대’로 전락한 검찰·경찰·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의 길을 공수처도 따라서 갈 것인가. 솔직히 현실적 전망은 비관적이다. 향후 공수처를 무력화하거나 정적 제거의 칼로 사용하려는 정부·여당의 시도는 노골화될 가능성이 크다. 무력감이 들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지금으로서는 4월 총선이 희망이다. 차기 22대 국회에서 사회정의를 중시하는 진보세력이 압도적인 세력을 형성한다면 정부·여당의 퇴행 시도에도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또한 국회가 법을 보완하여 공수처의 독립성·법적 권한·인적 자원을 강화한다면 공수처가 설립 취지에 맞게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공수처 처장·검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권도 공수처의 일탈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될 것이다. 윤석열 검찰정권에서 추락하고 있는 한국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잣대로 권력형 비리를 엄정 수사하고 사정기관의 권한남용·부패를 견제하는 공수처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희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