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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내가 바라는 자치경찰(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11-30 16:57
조회
832

이윤/ 경찰관


 얼마 전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특수부대 전역자끼리 어느 부대가 더 강한지 겨루는 설정인데... 훗... 나에게 최강부대는 의경부대다. 수십 년간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 기지를 24시간 철통같이 지켜준 것이 의경부대다. 이 사실 하나로 더 이상 설명은 시간 낭비다. 그래도 납득하지 못하는 분을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 대한민국 부대들 중 실전 경험은 의경이 가장 많다. 하늘을 덮듯 날아오는 화염병과 돌을 피하고 막으면서도 농담하는 여유. 쇠파이프와 물병, 몸싸움, 침 뱉기, 부모 욕 등 무수한 물리적·심리적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 서울 시내 길바닥에 앉아서 시민들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식과 취식, 심지어 취침을 하는 몰아의 경지. 나는 이런 부대에서 소대장 2년, 중대장 1년을 근무했다.


 의경부대에서 소모품처럼 근무할 때마다 ‘왜 이렇게 인력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낭비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내 맘대로 내린 결론은 돈이 안 들기 때문이다. 의경은 군복무 중이니 아무리 많은 인력을 동원해도 비용이 더 들지 않는다. 90년대에는 출동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이 없었으니 의경부대 근무 경찰관들에게도 추가 비용이 없었다. 그러니 아낌없이 사람을 쏟아붓는다. 심지어 경비 인력이 시위 인원수보다 더 많을 때도 있었다. 97년 수사부서에 근무할 때에도 젊다는 이유로 비상설부대 소대장으로 차출되어 6개월간 주중에는 수사업무를 하고, 주말에는 07시부터 23시까지 지하철역 테러대비 경비업무를 했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 당시부터였다. 내가 영·미식 자치경찰제의 열렬한 옹호론자가 된 것은. 자치경찰제가 되면 인력과 예산, 조직을 오롯이 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재산 보호와 범죄 예방 및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주민 세금으로 운영되니 낭비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효율적 치안정책을 개발하고,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커뮤니티 폴리싱 같은 주민 참여도 활성화될 것이다. 경찰관은 승진을 위해 높은 자리 계신 분에게 줄을 대려 하기 보다는 현재 직무에서 성과 창출로 인정받고자 할 것이다. ‘춤추는 대수사선’이나 ‘다이 하드’ 같은 경찰관련 외국영화를 볼 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서로 자기가 처리하려고 싸우는 모습이었다. 외국경찰이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관할 떠넘기기(속칭 핑퐁)’가 오래된 문제였던 한국경찰과는 너무도 달랐다. 덩치 큰 국가경찰인 한국경찰은 자치경찰에 비해 경찰관 개인의 직무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다양성 문제도 있다. 국가경찰은 전국에 동일한 치안정책을 동시에 적용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일제 검문검색이라는 것을 했다. 전국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도시든 시골이든 관계없이 경찰관들이 밤거리에 쏟아져 나와 검문검색을 했다. 통일된 지휘계통체계에 의한 일사불란한 치안활동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국가경찰 체제를 뒷받침한다. 나는 진화론에 기반하여 그것과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한 국가 내에서 지역마다 다양한 체계와 정책이 공존하는 것이 오히려 환경 적응력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눈으로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환경이 변화하는 요즘, 동일 형질만 존재하는 종은 외부 충격이 있을 때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 동종 내 많은 변이가 존재해야 그 중 적응하는 형질이 있어 전체 종의 생존에 유리하다. 한국은 영토는 좁지만, 지역마다 치안 환경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촉진해야 발전적 적응도 가능하다.



사진 출처 - 행정안전부


 좁은 영토는 국가/자치 경찰제의 고려요인이 아니다. 영토가 한국의 절반 정도인 스위스, 비슷한 오스트리아가 자치경찰제를 운영하고, 43개 자치경찰로 구성된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 면적도 한국과 비슷하다. 문제는 영토의 넓고 좁음이 아니라 권한의 집중과 분산이다. 각 지역이 스스로의 권한으로 치안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책임을 지도록 해야 경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아무리 독립성과 중립성을 선언하더라도 중앙집권적 정부조직은 정권의 눈과 입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인사와 예산, 조직구성이 행안부와 기재부 등 중앙부처와 국회에 의해 결정되고, 전국 경찰의 승진과 보직 운영 권한이 경찰청 지휘부에 집중되어 있는 국가경찰 체제에서는 경찰 구성원의 시선이 위를 향할 수밖에 없다.

 남북 분단 상황 역시 고려요인이 아니다. 군사적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군인의 역할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립경찰이 국군과 함께 전투 참여 및 빨치산 토벌을 하고, 휴전 후에는 무장공비를 토벌하고, 전경대가 김신조 루트를 경계했던 기억은 군사력이 약했던 과거의 역사다. 현재 세계 10위 수준인 국방력을 경찰이 보충해야 한다면 한국군에 대한 심각한 과소평가다.


 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을 우려하는 분도 계시는데, 이 문제는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해결하면 된다. 영국 자치경찰은 독립된 재원인 경찰기금(police funding)으로 운영되는데, 이 중 중앙정부 보조금이 자치경찰 전체 예산의 75%까지 차지했었으나, 예산 종속에 의해 국가경찰화 되는 것을 우려하여 오히려 중앙정부 보조금 비율을 70% 이하로 줄이려고 노력한다.


 자치단체장 및 지역 유지와의 결탁도 제도에 의해 예방할 수 있다. 영국 자치경찰은 지역치안평의회(10~20명), 지역치안위원장, 내무부장관, 지방경찰청장의 4원 체계로 운영된다. 주민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지역치안위원장이 지역치안 총괄책임자이고, 그에 의해 임명된 지방경찰청장이 지방경찰을 운용한다. 지역치안평의회는 독립위원으로 구성되고 예산감사, 지방경찰청장 임명 거부권 등 위원장 감시·감독 기능을 수행한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영국 어느 지역의 지방경찰청장 모집 공고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연봉 1억 원에 우리 지역 경찰청장님을 모십니다. 아래 자격요건에 해당하는 유능한 분들은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것이다. 만일 경찰이 자치단체장이나 지역 유지와 결탁을 하거나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일한다면, 독립된 수사기관 즉 국가수사본부나 검찰, 공수처 등의 수사를 받게 되므로 견제가 가능하다. 그리고 자치경찰위원회에 영국이나 미국처럼 다수 인원의 사무국을 별도로 두어 인사, 예산, 조직, 감사 등 업무를 실질적으로 맡기면 자치경찰을 지휘, 감독, 통제할 수 있다.


 2021년 7월부터 시행된 자치경찰제는 일원화모델이라고 하는데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완전한 자치경찰제를 하면 혁명적 변화가 예상되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치안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G7에 버금가는 선진국이 된 지금, 국민이 중심인 민주적 경찰체제를 갖추려면 자치경찰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